제목 [71호] 무위당학교 지상강좌 - 언젠간 싱글!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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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학교 지상강좌
 
언젠간 싱글!
 
강의. 나기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
정리. 편집위원회
 
1인가구가 대세다
 
원룸,혼자,외로움,고독,빈곤. 우리가 1인가구라고 하면 주로 떠오르는 말들이죠. ‘독거, 고독사, 위기가족, 결혼을 안 하고 사회를 붕괴하는 애들’ 혹은 ‘이기적인 애들’, 비혼, 저출산 혹은 비정상, 노처녀, 만혼, 이혼.. 언론이나 주변매체들이 1인가구를 이야기할 때 같이 언급하면서 비난의 용어처럼 쉽게 연상되는 말들인 것 같아요.
 
 
언제부터 1인가구가 많아졌을까? 위의 자료 <시대별 가구원수별 가구수>는 1980년부터 통계청에 나와 있는 가구구성 1인가구수를 총 가구 수를 나눠가지고 비율을 만든 건데요. 지금 현재의 1인 가구 비율은 전국기준으로 전체가구 구성 중에 29% 정도에요. 1980년대에는 1인 가구 비율은 4.8%밖에 안 됐었어요. 굉장히 극단적으로 높이 올라가고 있죠. 4인가구 이상이 70%. 4인~8인 그 이상 되는 확대 가족이 굉장히 많았는데 급격하게 내려가죠. 지금은 1인가구수와 4인이상 가구수가 거의 비슷해요. 1인가구도 29%, 2인가구가 24%. 3인가구와 4인 이상 가구도 비슷한 수준으로 골고루 나눠가지고 있어요. 4인가구가 심지어 1인, 2인가구보다 더 아래로 떨어졌죠. 지금 대세는 1인가구로 살거나 아니면 2인가구로 사는 게 대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우리나라만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서울시와 원주시 1인가구 비율>
 
통계청에서 조사한 현재 서울시와 원주시의 1인가구 비율이에요. 서울과 원주의 차이가 별로 없죠? 서울시도 전체 가구 수 대비해서 1인가구가 32%인데 원주시도 31.64%니까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죠. 전국 비율도 거의 다 20~30% 비율입니다. 미국도 비슷해요. 미국도 전체 가구 구성의 30% 정도가 1인가구로 보고되고 있어요. 가장 1인가구의 비율이 높은 나라는 스웨덴입니다. 스웨덴 같은 경우는 전체 가구 구성의 51%정도가 1인가구라고 보고되고 있어 유럽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죠. 그렇다면 이것은 특이한 사람이 갑자기 혼자 살겠다고 집을 뛰쳐나간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1인 가구는 대세에요. 그렇다면 어쩌다 전체 3분의 1정도가 혼자 사는 사회가 되었을까요?
 
1인가구가 대세가 된 배경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는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더퀘스트, 2013)라는 책에서 1인가구가 대세가 된 사회의 배경을 네 가지로 언급합니다. 첫 번째는 여성의 지위상승입니다. 예전에는 여성이 교육을 받거나 직업을 가진다는 것 자체를 사회질서가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의 재산권 자체가 허용이 안됐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이거나 남편의 재산이었죠. 여성이 본인의 이름으로 재산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굉장히 근대에 와서 시작된 일입니다. 여성이 재산을 가지고, 학교에 갈 수 있는 것은 보편적인 교육이 이뤄지면서부터입니다.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대학 진학률 자체가 높아졌죠. 교육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조혼이나 혼인의 확률이 낮아지는 반면 직업을 구할 확률은 더 높아지죠.
두 번째는 통신혁명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죠. 앞서 1인가구라고 했을 때 외로움이나 고독을 떠올렸듯이 같이 사는 사회가 좀 더 따뜻하고 연결감 있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사회라고 느끼고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처럼 느껴지잖아요. 누구나 혼자 살 수는 없고 연락과 대면을 하지 않고,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죠. 과거에는 면 대 면으로 만나야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TV나 인터넷으로 연결된 다른 콘텐츠를 통해 볼 수 있고 전화나 영상을 통해 그 사람 소식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연결성이라는 것이 굳이 같이 살지 않아도 가능한 시대가 됐죠. 이것이 우리가 떨어져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했습니다.
세 번째는 대도시의 확장입니다.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점점 일을 하러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서 대도시로 모여들게 되죠. 대도시의 익명성은 어렸을 때부터 오래 살던 동네와는 다르게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이라고 여겨지는 규범을 탈피해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1인가구를 확대시키는데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과거보다 평균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1인가구라고 얘기하면 결혼을 하지 않는 청년세대 문제라고 떠올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1인가구가 되는 사유는 굉장히 다양합니다. 1인가구는 노년세대의 문제가 더 큽니다. 긴 결혼생활 끝에 사별하거나 이혼을 해서 혼자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아이가 다 자라 독립한 이후에 1인가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체 삶의 생애 중에서 파트너와 함께 살 수 있는 기간은 한계가 있어요. 누군가가 같이 살다가 죽으면 혼자가 되죠. 혼자가 된 이후의 삶도 굉장히 길게 남아있다는 게 현대사회의 상황인 것 같아요.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가족 때문에 위기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려고 노력한 흐름도 분명히 이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사회에서는 90년대 후반부터 가족이라는 것 자체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어요. 호주제폐지운동이 있었고요. 그 당시 가족이라는 것은 가장으로서 대표된 호주가 있고 배우자와 아이들이 호주 밑에 속하도록 꾸려집니다. 남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여자는 안에서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삶이고 생애주기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다가 가족이 왜 호주 밑에 부속품처럼 들어가야 하는지, 모두가 평등한 상태에서의 조합일 수는 없는지, 그 가족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의 노동으로 유지되고 굴러가는지에 대한 질문을 여러 곳에서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런 곳들 중에 가장 크게는 페미니즘 운동이 있습니다. 가족 안에서의 노동은 과연 어떻게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있는가. 그런 불평등한 분배가 사회제도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질문하기 시작했죠. 왜 꼭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지만 가족이라고 부르는가. 결혼이나 혈연만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사람과 내가 정말 친밀하게 아끼고 돌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가족이라고 부를 순 없는가? 하는 질문이 대두되었죠. 이 당시에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주 이슈는 결혼제도와 가족제도의 불평등함. 그리고 그 안에서의 폭력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생활이 여성의 정상적인 삶이라고 강요되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에 민법에서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여성부가 여성가족부가 되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 당시 호주제가 없어지는 것을 가족의 붕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었죠. 가족의 기능을 좀 더 열심히 고민하고 보완하는 역할을 정부 중앙부처가 해야하는데 누가 할 것이냐? 여성이 가족을 돌보는 것이니 여성부를 여성 가족부로 고치자가 되었죠.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가족의 위기가 아니라 원래 가족 자체가 위기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족이라고 무작정 행복하지도 않은 것이고 그 안에서의 다양한 위치성과 서로간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차별이 있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식, 어머니와 남편, 어머니와 자식이란 이름도 그런거죠. 가사노동이건 출산휴가를 주지만 임금노동시장에서는 쫓겨나고 더 이상 경력이 연장되지 않는 현실. 어떤 특정한 젠더에게만 가족의 유지기능을 담당하도록 일임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가 유지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하는 사회는 온당치 않으며 불평등한 사회라고 이야기하는 성명이었습니다. 이것이 페미니즘 운동의 문제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또 하나의 운동은 장애인권운동입니다. 2011년 발표된 장애여성주거권에 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여성의 독립을 비롯해서 사생활이 보장되고 있는가?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는가? 함께 사는 이들 가운데 의사결정권이 보장되고 있는가?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할 수 있는가?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어떤가? 이런 것들을 조사하는 것이 주거상황 조사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보고서였습니다.
1인가구로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모여살기만 하면 뭔가 그 가족이 서로를 돌보고 그런 책임을 다해서 사회가 유지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가족 자원만으로는 해결해 낼 수 없는 과제들이 있습니다. 굉장한 케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가족에게 그것을 가족 안에서 해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가족을 유지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을 더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돌봄 부담이라는 것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고민 되어야 가족이 잘 유지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성원들 간의 폭력이라든가 아니면 차별 같은 것들이 없어지면서 는 것이다. 라는 이야기를 장애인권운동에서 하기 시작해요. 그리고 가족 돌봄 부담이 커지다 보니까 그 돌봄을 부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부담이 되는 주체들을 시설로 보내기 시작하죠. 장애인도 그렇고 뭐 부랑시설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부담하기 어렵거나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담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시설로 보내기 시작해요. 과연 그것이 온당한 일인가 과연 이것이 사회적으로 돌봄 부담의 책임이 어떤 식으로 나눠져야 하는가. 그랬을 때 시설에 들어가는 삶이라는 하는 것들은 결국에는 그 각각의 개인들이 자신의 결정권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삶 인거죠. 내가 일어날 시간 잠 잘 시간 화장실을 가고 싶은 시간 혹은 누구와 사랑하고 싶은 시간 이야기 나눌 시간 같은 것들을 통제당하고 규칙 안에서 생활해야 되니까. 그런 것들이 굉장히 차별적이기 때문에 인간이 한 개인으로부터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설에서 탈피해야 하고 그리고 돌봄 자원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음으로 인해서 가족 안에서 자체도 가족이 돌봄의 한계가 있으니까 가족 안에 있어도 그 사람에게 화장실도 안보내고 엘레베이터 없는 집에 살아가지고 가족들이 업고 내려오기 불편하니까 너는 그냥 집에만 있어라 학교도 안보내고 교육도 제대로 안 시키고 그런 삶이 이뤄졌을 때 과연 그것이 정말 제대로 된 가족이라는 것이 보장된 삶일까. 본인 개인의 삶이라는 것이 보장된 삶인가. 라는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했던 거죠. 원 가족의 안에서의 폭력 같은 것들이 더 드러나야 하고 그걸 탈피하는 것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좀 더 평등한 세상이다. 라는 것들을 여러 운동에서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 소수자 운동이 있습니다. 사실 ‘가족구성권연구소’는 페미니즘 운동과 장애인권운동과 성소수자운동 단위에서 다 같이 ‘가족’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연구모임이었어요. 한 사람이 자라나면서 이성을 만나서 법적인 결혼을 통해 가족을 꾸려야지만 정상적인 가족이라고 불리어지고 그런 가족 안에서 살아갈 때에만 아이를 낳는 것이 지원이 되고 바람직한 삶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같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던 거죠.
앞서 에릭 크레이넨버그가 말하는 배경과 사회·역사적인 변화의 흐름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가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원 가족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폭력에서 벗어날 기회, 그럼으로써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갈 자리들이 주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이어져 온 것이 1인가구가 확산되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저는 생각 합니다. 왜냐면 그렇게 사는 삶이 정말 바람직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사회라고 한다면 다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수가 없거든요.
 
일례로 나혜석(1896~1948) 신드롬이라고 하죠.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욕을 실현하고 섹슈얼리티를 실현한 여자는 결국 사회적 비난을 받고 길거리에서 혼자 고독사 하거나 객사한다는 이야기들이 많았죠. 그 당시는 가족을 벗어나는 삶이라는 것 자체에 롤모델이 없었고 가족을 벗어나서 어머니로서 혹은 아내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도덕적으로 비난받고 처벌 가능한 죄에 가까운 것이었죠. 좀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프랑스에서 여성권리선언을 처음 제기했던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 1748~1793)라는 운동가가 있었어요. 그녀는 여성도 정치를 할 수 있어야 되고 광장에 나가서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되며 여성도 참정권이 있어야함을 주장하다가 사형을 당하고 말았어요. 그녀의 사형을 주장한 남성정치인들의 근거가 “얘는 여자답지 않은 여자다. 아이를 안고 광장에 나가서 정치얘기를 하고 있다. 이것은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다.” 라고 주장을 했죠. 저는 사회적으로 어떤 젠더의 특정한 역할이 정상적인 역할이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때 사회가 처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면 1인가구가 이렇게 까지 늘어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런 생각들이 차별이고 혐오고 적극적으로 그런 것들을 없애야 우린 다른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한 운동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변화가 같이 오게 된 것 같습니다.
 
1인가구는 무조건 혼자가 아니다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불안은 있는 것 같아요. 1인 가구는 혼자로서의 삶이고, 고독한 삶이고, 가난한 삶이라고 생각하죠. 이 세 가기 생각에 대해서 얘기 해보려고 합니다.
1인가구는 혼자일까? 앞서 살펴본 통계에서 전체의 가구 구성에서 30% 정도가 1인가구라고 이야기 했는데 저는 통계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들 다 1인가구가 아닐 수도 있어요. 주민등록표상 1인가구일 수도 있겠죠. 주민등록표상 1인가구인 사람이 정말 혼자살고 있는지는 사실 알 수가 없습니다. 조사를 안했으니까요. 최근에 여성가족부를 대상으로 비혼 동거가구에 대한 실태조사를 하라는 청원이 들어갔죠. 비혼 동거가구가 얼마나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지원 대책들도 고민할 수 없는 거거든요. 주민등록표상 있는 사람이 정말 거기 사는 사람 전부 일 것이라 생각하면 굉장히 낡은 생각이죠.
1인가구나 독신이라고 이야기하면 정말 혼자인줄 알아요. 특히 결혼을 안 한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자꾸 누굴 소개시켜주려고 해요. 왜 그럴까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만나면 결혼을 해서 그 안에서의 가족을 이루는 것을 당연하다는 사고회로가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항상 물어봐요. “저 만나는 사람 있어요.” “그러면 둘 다 결혼 생각이 없어요? 합의가 됐어요?” “네. 합의가 됐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섹스를 결혼 바깥에서 하는 것, 아이를 결혼 바깥에서 낳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부도덕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 비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죠.
2007년에 비혼 여성축제라는 것을 열어서 비혼 선언문을 읽었어요. “우리는 고립된 성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꽃을 피울 수도 있고 함께 꽃 필수도 있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인가구의 삶에 대해서 파트너십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우리는 홀로도 있을 수 있지만 함께 꽃 필수도 있는 존재라는 말을 넣게 되는 거죠.
저는 지금 마포구의 단독세대주로 되어있습니다. 법적으로 결혼한 파트너가 없고 이성 파트너가 아닌 동성 파트너와 살고 있기 때문에 국가에서 주민등록표를 떼고 바라보면 마포구에 혼자 살고 있는 1인 가구죠. 하지만 저는 혼자 살지 않습니다. 통계의 오류가 있죠. 이런 관계가 포착되지 않으면 여기에 기반 한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는 거죠.
우리나라 민법 제 779조에는 가족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어요. ‘가족으로는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직계 혈족은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 이 조항은 사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만들어진 규정이에요. 원래는 민법규정자체를 없애고 가족에 정의 자체를 없애자는 의견이 많았는데, 그 당시 가족의 붕괴를 너무 염려하여 민법에 가족을 정의하는 규정을 두자고하여 제정된 것이 통과가 돼버립니다. 그래서 호주제가 폐지된 이후 지금까지도 이 규정이 남아있어요.
이 규정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있어요. 재난이 발생할 경우 내 가족의 안전여부를 보고받을 수 있는 권리는 민법 제 779조의 따르는 가족들만이 받을 수 있는데, 그렇다면 제 파트너는 제가 해외에서 사고가 나도 알 방법이 없게 되죠. 가족 관계가 여러 가지 사인에 의해 뿔뿔이 흩어지고 실제로 양육이나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은 민법상의 규정과 맞지 않은 다른 가족이 할 수도 있는데 그 사람은 신청할 권리가 없는 거죠. 실질적으로 우리가 맺는 관계에서 누가 누구를 돌보고, 부양하고, 양육하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거죠. 사각지대가 생기고 그 사각지대로 인해 차별화와 불평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가족개념을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가족구성권 연구에서는 이런 말을 많이 해요. 가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1인가구와 주거문제
 
서울은 지금 청년주택이 굉장히 핫한 이슈에요. 출퇴근 거리가 문제가 되니까 역세권에 청년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을 많이 지어서 공급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역세권 청년주택의 면적은 4평~5평정도 됩니다. 쪽방과 고시원 등 워낙 열악한 주거환경이 많다보니까 방음만 제대로 되고 문이라도 있으면 괜찮은 주거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 면적을 좁다고 생각해요. 15㎡, 16㎡, 17㎡, 21㎡ 중 제일 넓은 21㎡은 약 6평정도로, 청년주택에서 최대로 갈 수 있는 평수에요. 청년주택에는 돈이 많다고 넓은 평수로 가는 것이 아니에요. 더 넓은 평수로 가려면 신혼부부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주택, 신혼주택으로 특별 보급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증금과 월세가 주변 시세에 비해 낮고 계약기간도 8년으로 안정적으로 임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을 갖춘 임대주택이죠.
최저주거기준이라고 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장받아야 하는 주거공간의 기준인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1인 최저 주거 기준은 14㎡입니다. 일본은 70~80년대의 주택건설 계획에서 1인 가구에 대한 최저주거 기준이 16㎡인 것과 비교가 됩니다. 지금은 일본의 경우 25㎡까지 넓어진 상태고요.
이렇게 좁은 공간에서 살아도 된다는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 하다가 기사를 봤습니다. 청년주택을 지은 분이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청년층이 8년의 임대기간이 끝나면 어차피 결혼을 통해 더 넓은 신혼주택에서 살 수 있음으로 그전까지 적은 월세를 보장해주고 자신의 저축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청년주택공급의 목적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 얘기하더라고요. 사회적 자원을 배분할 때 정책입안자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결혼제도에 포섭되지 않고 법적인 가족을 이루지 않은 사람에게는 제대로 된 충분한 주거공간이 주어지기 힘들겠죠. 이런 생각을 차별이라고 이야기하고 바꾸도록 하는 것. 1인가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 혼자서도 저 공간에서 살기 힘든데 혼자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정부관계자들에게 설득하는 게 큰 과제죠. 혼자 살던 사람이 결혼했다고 갑자기 같이 사는 삶을 잘 꾸릴 수 있을까요? 누군가와 함께 공간을 공유하고 그 안에서 집안일을 나누고 협상을 하고 그렇게 부담을 나누고 역할을 조정하는 것들은 연습이 필요하잖아요. 많이 싸워봐야 하고 싸움의 결과를 통해서 자신을 바꿔나가는 과정인데, 그러기엔 너무 좁은 공간이죠. 누군가와 많이 부딪힐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협상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공간 세팅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연결되고 그 갈등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도록 건강한 관계를 세팅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인가구 = 고독?
 
1인가구 하면 많이 떠올리는 말이 고독사죠. 저는 20대 초반부터 사람들한테 결혼 안 한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랬더니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혼자라 외롭지 않겠냐? 애는 있는 게 좋지 않냐?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시고(웃음) 제 친구는 더 극단적으로 혼자 쓰러졌는데 아무도 안 구해줘서 시체로 발견되면 어떻게 하냐고 묻기도 했어요. 그게 고독사에 대한 가장 무서운 상상인가 봐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죽기 전까지 잘사는 게 중요하지 죽고 난 뒤에 내가 어떻게 발견될지는 그냥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불행한 죽음을 혼자 사는 삶과 연관지어 떠올리죠. 그렇다면 가족이 많은 사람의 죽음은 행복할까요? 나는 나이 들 때까지 굉장히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다가 내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날 지켜보는 가운데 죽을거라고 상상하시는 분 있으신가요? 그러면 좋겠지만, 병원 침대에서의 죽음을 상상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치매를 걱정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어떻게 올지는 모르는 일이죠. 그건 가족이 많다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지금 부모님이 나이 들고 요양병원 간다고 했을 때 자녀들이 그 부모님을 찾아가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부모를 돌보는 것은 자식이라는 생각. 아이를 낳으면 노후에 돌봄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내가 부모님을 돌보는 것도 쉽지가 않은 일인데 누군가가 나를 돌본다고 생각해보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죠.
효도는 셀프라는 말이 생겼죠. 자기 가정을 챙겨야하는 기혼 자녀들 대신 비혼 자녀들이 노후 돌봄의 자원으로 등장했어요. 그런데 비혼 딸이나 비혼 아들도 아플 수 있죠. 가족 안에서 돌봄을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 그 자원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고민을 해야 되는 문제입니다. 고독하다는 것은 죽었을 때 고독함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관계성을 어떻게 누리고 살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에노 치즈코라는 학자가 “혼자 살아도 고독하지 않으면 고독사가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가족과 함께 사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일까? 생각해보면 저는 이 말이 굉장히 공감돼요. 가족을 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고립될 수 있습니다. 부부 이외에 다른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한 사람들은 가족이 내 모든 관계에 필요를 채워주는 가족중심적인 삶을 계속 살았을 때 배우자와 사별 후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입거나 그 이후 관계회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누구나 1인가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삶을 대비하는 방법은 법적으로 이어진 가족이나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가족 이외에 다양한 관계들을 맺는 노력을 해야 그 이후 1인가구로서의 긴 나날을 고독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연습이 된다는 거죠.
저는 파트너와 제 이름으로 계약한 집에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만약에 저희가 결혼한 부부라면 임차권과 보증금에 대한 권리승계가 상속순위에 따라 법적인 배우자에게 가게 되겠지만,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죽으면 법적 상속인인 부모님에게 가도록 되어있습니다. 제 배우자는 이 집에 대한 권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대로 밖으로 나앉아야 되는 거죠. 사람들이 고독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가고 있는 관계를 이런 법들이 유지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1인가구와 빈곤문제
 
1인 가구의 가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숨겨진 빈곤》(푸른사상,2010)에서 정재원씨는 가난하지 않으려면 가족 안에서 자원배분이 달라져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가족 규범은 여성들을 교육기회로부터 배제, 심리적 지지로부터 배제, 직업능력향상으로부터 배제, 노동시장으로부터의 배제, 노동자 정체성 형성으로부터의 배제를 경험하게 되는 차별기제로 작동되었다고 봅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그런 얘기 많이 들었거든요. “교사 해라, 나중에 애 낳고 키우기 좋은 직업이다. 가족 양육하기 좋은 직업이다.” 라는 식의 제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다른 루트의 진로를 탐색하거나 더 고소득이나 고위험군 직업을 택하게 되면 격려 받지 못하는 거죠. 이런 소소한 차별들이 쌓여서 결과적으로 빈곤에 이르게 됩니다. 1인가구의 빈곤은 그 당시에 한 사람의 빈곤상태를 해결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전 생애에 걸쳐서 가족제도 안에서 경험하는 빈곤의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 봐야합니다.
 
1인가구와 가족구성권
 
1인가구로 잘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여러 차별을 해소하고 적극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권리를 탐색하는 일까지 나아가는 게 너무 힘듭니다. 주변 사람들이 내 미래를 너무 걱정해줘요. 미래를 걱정해주는 사람을 하나하나 거절하고 왜 이렇게 살아야하는지 내 삶을 설명하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듭니다. 그것을 넘어서고 다음 단계가 오면 본격적으로 어떻게 잘 살 건가, 사회가 포착하지 않은 나의 관계와 삶을 어떻게 인정받고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하죠. ‘가족구성권’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1인가구의 삶과 가족을 구성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성애 중심적인 결혼관은 섹스와 출산 그리고 양육만을 정상적 가족관계로 여기는 이데올로기입니다. 특정한 형태의 가족관계와 돌봄 및 양육만이 정상적으로 여기는 규범에 기반하고 있는 제도들이 다양한 결합을 방해한다고 이야기하고 지적하는 것이 가족구성권에서 가장 큰 핵심입니다. 또한 가족구성권은 결합할 권리만이 아니라 기존의 만들어져있는 관계에서 빠져나올 권리도 포함하고 있어요. 쉽게 빠져나오고 다시 구성할 수 있고 구성이 결정되면 다시 해소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이 원활히 이루어지게 하는 거죠. 다양한 결합과 해소가 가능하도록 보장될 수 있는 제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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