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4호] 생명의 글 - "아직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인터뷰
등록자 황진영 등록일자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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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인터뷰 -
 
인터뷰, 정리 - 소식지편집위원회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구태와 부조리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투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전선에 나오지 못한다.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먼저 깃발을 드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한 사회의 진보는 안온한 일상을 포기한 소수의 헌신으로부터 시작되곤 한다.
최병성 목사는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귀중한 기수 중 한 사람이다. 1999년 영월 서강 쓰레기 매립장 반대 투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다. 이후 이른바 ‘쓰레기 시멘트’의 위험성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 시절엔 4대강 사업과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지난 세월은최병성 목사에겐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보람이었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했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필 활동에 전념하고자 용인으로 왔지만 공교롭게도 또 다시 일이 벌어졌다. 이주 6개월 만에 마을 앞산이 허물어지더니 그 자리에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준공 후엔 콘크리트 기능강화 실험을 위해 각종 화학물질이 취급될 예정이었다. 인체안전기준조차 미비한 상황인데다가 업체 측에서는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조차 공급하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 환경운동가가 있다고 해서 찾아왔다’는 마을 주민들을 최병성 목사는 외면할 수 없었다. 

Q. 아파트에서 불과 60여 미터 정도 거리에다가, 더구나 초등학교 담장 너머에 연구소가 지어진 셈인데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요?

최 / 제도의 맹점이죠. 주민들과 함께 건축 인허가 자료수집을 열심히 했습니다. 콘트리트 혼화제가 뭔지 사람들은 잘 모르잖아요. 그저 시멘트 만드는 곳이 들어서나보다 하고 있었대요. 제가 쓰레기 시멘트 공부하면서 혼화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으니까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설명을 했죠. 주민들 중에 학부형이 많다보니까 직업들이 다양해요. 정보력이 빠르더라고요. 환경영향 평가서를 가져오는 사람, 용인시에 정보공개를 요청을 해서 인허가 서류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것을 취합을 해서 가져오면 제가 확인해보고 뭐가 문제인지 설명해주는 모임을 가졌어요. 초등학교 강당에 주민들이 다 모여요. 그러면 제가 한 주간 모은 자료를 피피티로 만들어서 뭐가 문제인지를 설명을 했어요. 녹색부흥회를 했죠. (웃음)

Q. 지역 주민들의 경우에는 (투쟁의) 경험이 없으시다보니 목사님의 역할이 중요했을 것 같습니다.

최 /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진데 관하고 싸워서 이기기 정말 힘듭니다. 서강 쓰레기 매립장 투쟁 몇 해 전에도 서강 근처에 분뇨 처리장이 들어왔어요. 주민들이 어마하게 잘 싸웠어요. 그렇지만 결국 졌어요. 주민들이 너무 잘 알아요. 잘 싸워도 진다는 것. 그런데 쓰레기 매립장 투쟁 같은 경우에는 좀 달랐죠. 이게 왜 아닌지를 언론에 보도하고 인쇄물로 만들어 영월 시내에 뿌렸어요. 방송에 나오니까 주민들이 힘을 얻죠.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한 거예요. 주민들에게 명분을 쥐어주니까 옹정리, 광전리라는 두 개의 작은 마을이 단결이 돼서 알차게 잘 싸운 거죠. 용인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 인터뷰를 오면 물어보더라고요. 어떻게 주민들이 이렇게 싸우냐. 업체에서 오십 명 넘게 고발했어요. 손해배상이 39억이면 결코 작은 돈이 아니잖아요. 업체 측에서 별 회유를 다 했어요. 그렇지만 주민들이 ‘아니’라고 했죠. 넘어간 사람은 10명도 안돼요. 그래서 제가 마을 설명회를 하면서 이미 주민들이 스스로 먼저 일어난 사건이지만, 이 사업이 왜 잘못인지를 되짚어봤죠. 우리가 대법원까지 갈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줬어요. 나이든 아주머니들 입에서 대법원까지 가겠다는 말이 나왔어요. 무슨 협상이냐는 거죠. 무조건 싸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에게 정당성을 인식시켜줄 때 힘이 됩니다. 지역에서도 누군가 한 사람이 주민들에게 싸움만 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인식을 바꿔주면 주민들이 스스로 싸웁니다.

Q. 결국엔 용인시에서 허가를 취소했죠?

최 / 주민들이 문제제기를 계속 하고 이 산의 풀 한 포기까지 확인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서가 굉장히 부실하게 작성이 됐다는 사실을 밝혀냈고요, 업체 측의 여러 가지 거짓말도 입증을 했습니다. 2016년 4월 10일 날 용인시가 건축허가를 드디어 취소를 해요. 1년 4개월 만에 허가 취소를 한 거죠. ‘이제는 끝났다.’ 했는데 이 업체가 또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에 용인시 건축허가 취소가 위법하다며 제소를 했습니다. 결국엔 위원회가 업체의 손을 들어줬어요. 그 이후로 업체가 공사를 계속 진행했습니다. 이미 그냥 뒀으면 건물이 다 올라갔을 거예요. 제가 중간 중간 불법이 보여서 신고를 했죠. 그래서 공사 중단이 몇 달됐죠. 그리고나서 또 무언가를 신고하고, 그러면 또 공사중단 한 달 되고. 그래서 아직 이 정도밖에 공사를 못한 거예요. 그래서 다행히 시기상으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여건이 된 거죠.

Q. 영월의 경우에는 언론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고 하셨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최 / 제가 살다가 이렇게 지옥같은 싸움은 처음이에요. 왜냐하면 서강은 그래도 재밌었어요. 언론이 받아주고 그 결과 강을 지켜냈잖아요. 그런데 이건 산은 날아갔어요. 산은 날아가고 건물은 짓고 있고 보존할 것도 없어요. 그 다음에 용인에 난개발로 깎이는 산이 얼마나 많아요. 그러니까 언론이 취재도 안 해요. 너무나 흔한, 산 하나 깎는 일이니까. 언론에라도 나가야 힘이 되는데, 나한테는 일이 큰데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나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래저래 힘든, 지옥같은 하루 하루를 보냈어요.

Q. 목사님 내면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있었을 것 같아요.

최 / 아이러닌데요. 지금도 저는 싸움이 싫어요. 조용히 산 속에서 글 쓰고 사진 찍고 살고 싶어요. 그런 게 저한테는 잘 맞아요. 평생을 산 속에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이에요. 내 기질과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전략을 짜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정보를 어떻게 이용하고…. 또 제가 자료를 좋아하니까 사진을 찍고, 이러한 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저한테 있더란 말이죠. 쓰레기 시멘트 같은 경우도 사실 시멘트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가 대한민국에는 없어요. 그런데 아무 자료도 없는데 제가 그걸 가지고 싸웠잖아요. 어쩌면 교회보다는 이런 일이 나한테 가장 잘 맞는 건가보다, 힘든 길이긴 한데, 나한테 맞는 기질은 아니지만 내 안에 숨어있는 하나의 재능인가보다 하는 생각을 하죠.


 
Q. 댓글공작 사건에 연루된 전 국정원장이 징역 4년을 선고받았잖아요. 비교해서 목사님이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는 것이 참 놀라웠습니다. 상을 줘도 부족한 분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요?

최 / 말이 안 되는 거죠. 벌금이나 징역 1, 2년 정도가 아니라 법으로 정한 최대치를 구형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으로 인해서 문제가 커졌어요. 징역 5년이 아니었으면 사건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텐데. 사람들이 탄원서 받기 운동을 하고 용인시장 후보도 관심을 가졌고요. ‘이 사건이 용인시 난개발 해결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라, 대한민국 환경운동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죠. 하나님의 역사는 저도 정말 모르겠어요.

Q. 탄원서 보내기 운동 말씀을 좀 나눠볼게요. 내용을 보니까 최 목사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녹아있는 글들이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환경운동을 하시는데 굉장한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최 /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사람들이 나를 신뢰해 준다는 거예요. 얼굴도 한 번 못 뵌 분들이잖아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탄원서를 보내달라는 부탁들 담아 SNS에 글을 썼어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요새 누가 귀찮게 편지를 써서 우체국에 가서 부치고 하겠어요. 하필 그 날 비가 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거의 70명이 넘는 분들이 탄원서를 법원에 보내셨더라고요. 직업도, 연령도 정말 다양한 분들이 보내주셨죠.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되었고 관심을 모으는 계기가 됐고 좋은 일로 반전시켜버린, 구형한 검사가 고마울 지경이에요.

지난 5월 24일, 수원지법은 경기도 용인시 지곡동에 추진 중인 콘크리트 혼화제 연구소의 건축 공사를 방해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병성 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형사 고발 2년 5개월만의 일이었다. 최 목사와 주민들은 용인시의 건축허가 취소 결정을 뒤집고 업체 측 손을 들어준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내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Q. 산은 깎였고 건물은 이미 지어지고 있단 말이에요. 앞으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할까요? 

최 / 건물을 부수면 더 큰 소음과 피해가 있죠. 경사가 너무 심해서 복구자체가 불가능해요. 어차피 원래 목적대로 운영하게 하면 안 되니까 폐허로 둘 순 없고.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들이 준공 못하고 건물을 못 쓰니까 용인시가 인수를 해야죠. 사실 이 마을이 상당히 낙후된 마을이에요. 교통도 불편하고요. 아무 복지시설이 없어요. 초등학교 딱 하나 있는 거예요. 시장도 없고. 그래서 그 건물을 도서관이나 문화시설로 바뀐다면 이 마을 주민들에게 축복이 되는 거죠. 주민들이 애쓰고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이 되지 않을까.

Q. 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목사님과 같은 선례가 있다는 것이 굉장히 희망적인 일이 아닌가 싶어요. 계속해서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려면 이번 사건을 비롯해 목사님께서 진행해왔던 일련의 투쟁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백서를 만들려고요. 이런 난개발 문제들이 일어나는데 정말 제가 싸울 수 있었던 건, 정보공개를 통해서 우리 주민들이 숨어있던 사실들을 찾아왔기 때문이에요. 어떤 절차들을 통해 어떤 서류를 찾아야하는지 백서를 펴낼 예정이에요. 그 자체만으로도 난개발 저지에 도움이 될테고, 또 특위가 만들어지면 이 작업을 함께 진행해나가려고 해요.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 많은 일은 안했지만 몇 가지 일을 했는데 하는 것마다 사람들이 다 지는 싸움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 이겼어요. 쓰레기 시멘트는 저 혼자 재벌들과 싸웠잖아요. 그렇지만 잘 싸워서 법을 바꿔냈어요. 사대강은 비록 졌지만 대중들이 저와 많은 분들이 함께 한 싸움을 계기로 관심을 많이 갖게 됐잖아요. 그냥 동네 작은 난개발 사건 하나가 용인 전체를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Q. 시민들이 사실은 환경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같이 뜻을 모아주어야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요. 혹시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최 / 일단 누군가 희생하는 이가 한 사람 꼭 필요해요. 희생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모여요. 여기서도 주민들이 강연을 통해서 계속 생각이 바뀌었으니까요. 누군가 사람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구심점이 있으면 사람들은 힘을 실어주게 돼 있어요. 다만 젊은 사람들이 더 많이 참여하면 좋겠죠. 바쁘고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 시대라 조금 어렵긴 한데, 필요한 자리에 필요한 사람이 있더라고요. 항상. 함께 해나갈 수는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변하지 않고 꾸준히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아직까지 대한민국이 희망이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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