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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4호] [생명의글] 냉장고 없이 1년 살아보기
등록자 황진영 등록일자 2018.08.17
IP 59.29.x.153 조회수 140
냉장고 없이 1년 살아보기
 
백송희 편집위원
 
 
산다는 것은 꼭 계획이 먼저이고 그에 따라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일이 생기고 불현 듯 계시라도 받은 듯이 ‘그래 이 참에 해보는 거야’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도 있다. 사실 내가 사는 일이 대체로 그러하다. 이를테면 이사를 한다. 집이 좁아져서 짐을 줄여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 ‘티비 없이 살아보자.’ 하고 결심을 한다. 그렇게 우리집은 티비가 없고 에어컨은 애초에 없고 선풍기 컴퓨터도 없는 전기 청정구역이 되어 갔다. 물론 남들과 얘기할 땐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다. 뭐 꼭 일부러는 아니고,
 
“티비가 없어요?”
 
“네”
 
“어머 대단하다. 나도 생각은 하는데 막상 없애려니까 잘 안 되더라구요.”
 
‘집을 줄여서 어쩔 수 없었어요.’라는 없어 보이는 뒷말을 붙이지 않는다. 사실 반응의 절정은 선풍기다. ‘어른은 자기의 이상이나 삶의 태도라지만 아이는 무슨 고생이냐!’ ‘뭐 그리 세상 어렵게 사냐’ ‘선풍기는 전기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는 잔소리같은 반응도 있고 ‘존경스럽다’ ‘저런 사람도 있어야 돼’ 하면서 눈빛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반응까지 다양하다. 역시 고장났는데 그 참에 한 번 없이 살아보는 거라는 얘기는 생략한다. 뭐 그리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살겠는가!
 
 
그러던 차에 이번엔 정말 큰일이 났다. 덜덜덜 거리던 냉장고가 우렁찬 소리로 돌아가던 냉장고가 ‘뚝’ 정말로 ‘뚝’ 소리를 멈췄다.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했다. ‘아니야 잠시 쉬는 거야, 그래 피곤할 테지 10년을 열심히 일했으니’ 멈춘 냉장고를 두고 일하러 나갔다. ‘내가 다시 돌아 올 때는 우렁차게 돌고 있어야 해!’ 간곡한 부탁을 하고 나간다. 냉장고를 고치고 수리기사를 부를 시간이 없이 이틀이 지나갔다. 수리기사를 부르려면 집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었다. 일단 상하기 시작한 음식물을 때문에 냉장고를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청소를 시작하고 보니 냉장고에는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다. 김치, 양념류, 금방먹은 야채종류 외에 끝없이 나오는 이 음식물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무슨 이유로 이곳에 있단 말인가! 야채실 구석에서 냉장선반 구석구석 저 안쪽에서 ‘네가 나를 방치한 결과를 봐!’ 하면서 원망하듯이 일그러지고 상처입고 썩어가는 것들이 줄줄이 나온다. 이제 냉동실 문을 열어야 한다. 한기가 흐른다. 냉동실 냉기와 상관없다. 저 곳에는 또 어떤 존재들이 있을까. 비틀어질 대로 비틀어진 떡의 반항은 애교다. 자기 색을 바꾼 고기도 봐줄만 하다. 냉장고 처음 샀을 때 감금 되었을 것 같은 저~~ 것들은 대체... ‘너 누구냐?’ 올드 음식들이 세상의 빛을 처음 본다는 듯이 앞 다투어 나온다.
 
‘냉장고 없이 살아볼까!’
 
냉장고에 쌓아두고 살게 되는 습관을 바꿔보자는 생각이 컸을까? 전기없이 살 수 없는 삶을 시험해 보고 싶은 생강이었을까? 냉장고가 너무 비싸서 에이 없으면 못사나? 하는 반항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결정하는데 5초도 안 걸렸으니 뭐 그리 깊은 생각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냥 시작되었다. 한 일 년만 살아보기로, 일 년은 계절별로 어떨까를 경험해 보고 싶어서 1년의 기간을 정했다. 사실 그보다 더 오래는 자신이 없었다.
 
 
4월에 시작
 
– 봄 -
아직 남아 있는 김장김치들이 무서운 속도로 쉬기 시작한다. 다행히 많은 양이 아니다. 김치찌개를 왕창 끓이고 나눠주었다. 냉동실에 구제 가능한 것들도 나눠준다. 갑자기 인심이 좋아진다.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고 계속해서 인심이 좋아진다. 나누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다.
 
냉장고를 생각 못하고 장을 보다 집에 와서 당황한다. 채소들은 대체로 두 식구인 우리가 감당하기 양이 많다. 며칠은 괜찮겠지 두었다가 시들고 상하고 그렇게 버리기를 반복하다 채소를 사지 않는다. 채소는 먹어야 하는데 어쩌나.
 
유난히 더운 5월이다. 아이가 찬물을 먹고 싶어한다. 나도 미지근한 물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우리 둘다 시원한 물이 먹고 싶다.
 
봄 텃밭 작물들 수확시기가 되었다. 여기 저기서 상추, 쑥갓, 청경채 그리고 나물을 데쳐서 주시기도 한다. 다 받을 수가 없다. ‘2번 먹을 것만 가져 갈게요.’ ‘왜?’ ‘식구가 적어서요.’ ‘두었다 먹으면 되지.’ 친절하게 어떻게 보관하면 냉장고에서 오래 가는지 설명해 주신다.
 
- 여름 -
내가 미쳤었나 보다. 왜 그런 되도 않는 결심을 한 거지! 유난히 뜨거운 여름이다. 아니 유난히 뜨겁게 느껴지는 여름인지도 모르겠다. 집에 들어가면 시키지도 않은 난방이 잘 되어있다. 40년도 넘은 오래된 주택 특유의 고집. 여름에는 난방을 겨울에는 냉방을 어찌 그리 잘하시는지. 딸라 빚을 내서라도 사고 싶다. 냉. 장. 고. 누가 나 좀 말리도~~~
저녁에 음식을 다 먹지 않으면 아침이면 상해 있다. 김치는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찌개용으로 가야 한다. 모임에서 같이 밥을 먹다가 내가 물김치를 너무 맛있게 먹으니 싸주신다고 하신다. 너무너무 맛있는 물김치지만 평소 같으면 ‘고맙습니다.’하고 넙죽 받겠지만 갑자기 예의가 있어진다. ‘어머 아니에요. 맛나게 많이 먹었어요.’ 교양은 조건이 만든다. 난 그렇게 교양있는 여자가 되어간다. ‘고맙습니다. 마음만 받을게요.’ 모 이런 나답지 않은 대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래도 싸주겠다는 음식은 ‘한 끼 먹을 것만 주세요.’그리고 정말로 딱 한 끼 먹을 것만 얻는다. 안 그러면 상해서 버려야 하니까.
사먹는 일이 많아진다. 웬만하면 외식을 하고 들어가고 해먹을 때도 1차 농산물 보다는 가공품 이용을 많이 하게 된다. 한살림에 가공식품이 늘어가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도 격하게 반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여름동안은 감사드렸다. 한살림 된장국, 미역국, 코다리찜 딱 우리 두 식구 한 끼에서 두 끼 먹을 분량이다. 버리지 않고 다 먹을 수 있다.
채소를 사서 음식을 해먹을 땐 첫째는 채소가 많아도 다 한다. 그리고 나눠준다. 그렇지 않을 경우 채소를 집에 가지고 가기 전에 나눈다. 한살림 시금치의 경우 반 정도면 적당하다. 딱 한끼 먹고 치울 수 있다.
시간이 지나니 미지근한 물도 익숙해진다. 물이건 국이건 차거나 뜨겁거나 둘 중의 하나여야 한다. 미지근한 것을 절대로 먹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서는 좋은 일이다. 입에서 달다고 다 속에 좋을 순 없지. 아니지. 입에서 단 것이 대체로 속에는 좋지 않은 것이 많다. 술도 그렇고.
 
- 가을 -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뜻선뜻 해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간다. 그래 여름의 고생을 옛말 하듯이 살자. 아~ 어서오시오 가을. 그런데... 아, 그런데... 뭔 가을이 이렇게 뜨겁냐고요. 좋아진 것이 있다면 저녁밥이 아침에 상하지 않는다. 나물도 국도 저녁에서 아침까지는 안전지대다. 하지만 아침에서 저녁은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 조금 더 가을이 깊어야 한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안정권에 들어섰다. 다만 많은 종류의 음식을 하지 않는다. 집에서의 조리를 최소화 하게 된다. 반찬 가짓수도 많이 줄었다. 저장류의 반찬은 없다. 딸아이가 한 참 크는 나이여서 고기를 많이 찾는다. 고기를 살 때도 300g을 넘지 않는다. 생선요리는 거의 하지 않거나 갈치는 한 마리만 산다. 포장단위가 있는 생협에서는 살 수가 없다. 겨울에는 가능하려나? 마당이 다 냉장고가 아니겠는가 하하하.
 
- 겨울 -
겨울동안 우리 집 부엌은 대체로 평화로웠다. 한파가 오기 전에는 그랬다. 친구가 김장김치 두통을 보냈다.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그랬는데 모임의 총무님께서 또 김치를 보내셨다. 냉장고도 없어서 김장을 안 하겠다고 한 건데, 김장을 안 하니 보내줘야겠다고 생각했나보다. 어떻게 보관할까 밖은 얼고 안은 쉴 거고. 아! 창고가 좋겠다. 창고는 김치냉장고 만큼은 아니지만 훌륭한 보관장소가 되어주었다. 서서히 익어가면서 김치도 참 맛이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파가 닥쳤다. 보일러실 물이 얼을 정도였다. 김치들이 완전히 꽝꽝 얼어 버렸다. 한파가 지나도 쉬이 녹지 않는다. 얼었다 녹은 김치는 질겨지고 맛도 완전히 달라져 있다. 그대로 두었다가 어느 잔칫날 등갈비묵은지찜을 왕창 해먹었다.
 
사람들이 묻는다. ‘냉장고 없이 일 년’의 결론이 무엇이냐고. ‘냉장고 있어야 한다’라고 대답하면 다소 실망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럴 줄 알았다는 분들도 계시고.
 
냉장고 없이 살면 같이 사는 아이한테 미안한 일이 많이 생긴다. 내 선택으로 인해 우리 딸은 많은 것을 포기했다. 여름밤 아이스크림, 시원한 수박, 찬물, 얼음넣고 타먹던 오미자효소, 학교에서 야외학습갈 때 얼려주던 엄마표 음료수, 때로는 좋아하던 엄마의 요리.
시골에서 텃밭을 가꾸면서 한다면 한 결 쉬워질 것도 같다. 채소는 바로바로 따먹으며 되고 시원한 우물이 있다면 수박이랑 김치는 담궈놓고, 생각해보니 옛날 외가집 풍경이다. 지금은 외갓집도 그런 풍경이 없다. 부산 범어사 밑에 있는 외갓집은 이미 시골이 아니다. 시절이 그렇게 바뀌는 동안에 사는 살림도 바뀌었다. 나눠먹는 옛날의 사람살이가 저장시설이 늘면서 쌓아놓고 사는 삶으로 바뀐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굳이 나누지 않아도 살아지는 삶은 이웃과의 담을 계속 쌓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림을 둘러싼 많은 것들이 같이 굴러간다.
 
지난 일 년이 괜한 짓은 아니었다. ‘냉장고 없이 일 년 살기’ 후에 가장 큰 변화는 냉장고 크기가 작아질 것이다. 우리 딸과 살기 적당하게 작은 냉장고를 골라서 쌓아놓지 말고 살아볼 것이다.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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