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1호] 특집-무위당 26주기: 추모사. 선생님은 가시고 나뭇잎은 푸르다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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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무위당 26주기: 추모사. 선생님은 가시고 나뭇잎은 푸르다
 
 
무위당선생님 26주기 추모사
 
선생님, 선생님이 저세상으로 떠나신지도 올해로 26주기를 맞이합니다.
무심한 것이 세월이라 어느새 그렇게 흘렸습니다.
선생님이 떠나신 날 부음을 듣고 달려와 늦게 봉산동 댁에 도착했을 때, 전등 불빛에 비치던 마로니에의 푸른 잎새가 지금도 엊그제 같은 느낌으로 떠오릅니다. 가슴은 먹먹한 슬픔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어떻게 저 나무 이파리는 그토록 생생하게 푸른지 놀라웠습니다. 그때, 저에게 든 생각이 ‘아하, 선생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저렇게 푸르게 계시는구나.’ 하는 일깨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 바쳤던 서툰 제 추모의 시가 ‘선생님은 가시고 나뭇잎은 푸르다.’ 였습니다.
선생님, 그렇게 떠나신 뒤에 어느새 사반세기가 지났고 그때 검었던 제 머리칼도 이제는 하얗게 되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절로 나이도 먹어 이제는 늙은이 취급조차 받을 때가 있지만 저의 모자람과 어리석음은 선생님 생전에 봉산동을 드나들 때나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떠나신 뒤에 앞길이 어둡고 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면 어디 가서 길을 물어야 하나 한탄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생전에 선생님의 일깨움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그렇게 행하며 살아오지도 못했다는 자책과 아쉬움이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합니다.
 
선생님은 처음 뵈었을 때부터 줄곧 저에게 대인(大人)의 길을 일러주셨습니다. 자연에 사사로움이 없는 것처럼 대인 또한 사사로움이 없이 마치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씀으로 그 길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돌아보면 아직도 소인 노릇에서 크게 벗어나고 있지 못함을 봅니다. 오늘도 선생님께서 병환 중에 써서 보내주신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吾不如老農).’란 글씨를 보며 그 뜻을 다시 새겨봅니다.
 
선생님, 지금 코로나19라는 대괴질로 인해 이 나라뿐 아니라 온 세계가 충격과 혼돈 속에 빠져 있습니다. 생명가치보다 물질과 소유가치를 더 중요시하고 인간의 풍요와 편리를 위하여 자연생태계를 무차별적으로 짓밟고 파괴하는 반생명, 반생태적 문명이 초래할 위험과 위기에 대해 선생님은 일찍이 저희에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같은 괴질의 창궐은 그런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닥 쳐올 것이라고 이미 예견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재앙과 파멸의 길을 벗어나는 길은 생명의 길, 모심과 살림의 길이라고, 그렇게 죽임의 문명에서 살림의 문명으로 가는 길 그 생명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한살림, 함께 살고 하나로 사는 살림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아직도 미망 속에서 옛 삶의 방식에 붙들린 채 선생님의 당부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여 우려하셨던 대로 지금과 같은 재난을 맞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대로 간다면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제2, 제3의 병겁이 이어질 것이고, 보다 본질적으로는 이미 비상사태에 이른 기후위기로 인한 대재앙이 닥 쳐와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절박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처럼 이런 인류적 재앙이 새로운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한 절실한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제 선생님께서 일깨워 주시고 당부하셨던 생명의 길, 그 문명으로의 전환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게 됩니다. 그 길만이 나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길임을 이제는 몸으로도 뚜렷이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코로나19 이후는 그 이전과 달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인류에겐 더이상 미래 없다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달라져야 할 세계의 실상과 이를 위한 구체적 실현방법에 대한 논의는 아직 미미합니다. 이 전환의 길에 선생님의 일깨움과 당부를 새기며 그 길을 함께 열어가겠습니다.
선생님, 올해는 부득이 코로나19로 인해 묘소에서의 추모행사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올해도 선생님의 기일을 앞두고 한살림생산자분들과 무위당사람들의 식구들이 선생님과 선영의 묘역을 말끔히 다듬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잘 다듬어진 묘소에 전국의 무위당 식구들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자리를 함께하여 그 뜻을 새기고 만남을 반기는 것 또한 즐겁고 중요한 일인데도 올해는 그럴 수 없어 아쉬움이 큽니다. 그러나 전국의 무위당 식구들, 형제자매들과 만남은 다른 기회를 통해서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번 이런 모임이나 행사를 할 때마다 생전에 당신의 이름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 말씀을 새기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해가 갈수록 선생님의 일깨우심과 당부하신 말씀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와 이를 알리고 나누는 일의 중요성이 높아가고 또 선생님의 생각과 삶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도 늘어나서 이를 위해 ‘생명협동교육관 건립’과 선생님의 작품을 디지털화하는 사업을 올해의 주요사업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런 일들이 모두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올해부터 이 일의 책임을 생전에 선생님께서 귀히 여기시던 동주선생이 맡아 애쓰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당신의 뜻을 거스른다고 하지 마시고 편하게 지켜봐 주십시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자연을 거스르고 생명에 반하는 이 문명이 어떻게 생명평화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해갈 수 있을지, 그런 물꼬가 터질 수 있을지는 우리가 얼마나 깨어나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부디 저희가 그렇게 깨어나 그 길로 신명 나게 걸어갈 수 있도록 지켜주십시오. 그래서 내년에는 우리 자신과 세상이 그렇게 바뀌고 있다는 소식을 선생님 묘소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고할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십시오.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함께 하시는 저세상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2020년 5월 22일 선생님 기일 26주기에
여류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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