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2호] 세상이 망한 듯 _ 특집 우리 시대의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님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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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우리 시대의 생태사상가 김종철 선생님
 
세상이 망한 듯
 
글. 원상호 편집위원장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님의 침묵 중 
 
지난 6월 25일 김종철 선생님께서 영면하셨습니다.
무위당사람들과 특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계셨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망연자실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김종철 선생님의 뜻을 되새겨보기 위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생태 별이 지다
 
“생태적 세계관은 단순히 환경위기를 해소하는 데 필요한 보완적 사상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파국적인 생태적·사회적 위기를 초래해 온 좁게는 산업문명, 넓게는 인류문명사 전체의 기본 논리를 가장 근원적으로 물어볼 것을 요구하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 장일순 선생의 생애를 통한 가르침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 왔던 보다 크고, 보다 빠르고, 보다 힘 있고, 보다 많은 것을 무조건적으로 탐하는 욕망의 구조로부터의 해방에 관한 것이다.”
 
『녹색평론』의 발행·편집인이자 생태사상가 김종철(1947~2020) 전 영남대 교수가 지난 6월25일 오전 별세했습니다. 향년 73세.
선생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6·25 전란을 겪었고 전쟁 이후 마산에서 중·고교를 나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0년부터 영남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4년 교직을 그만두고 녹색평론 편집·발간에 전념했으며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녹색당 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주로 시에 대한 역사주의적 해석과 비평에 힘썼으며 생태운동과 평화운동에도 앞장선 이론 겸비의 실천가였습니다.
1991년 11월 창간한 격월간 『녹색평론』은 무한 성장 신화에 빠져있던 한국 사회에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다고 평가 받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창간사에서 “오늘날 생태학적 재난은 인간이 진보와 발전의 이름 밑에서 이룩해온 문명의 위기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최신호인 2020년 7·8월호(173호)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이 30년 가까이 지속해왔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
 
(사)무위당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그는 무위당만인회 공동전국대표이며 영문학자이자 운동가, 사상가로 끊임없이 생태 문명과 공동체 건설을 주장해 왔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과는 1992년 딱 하루 만났지만 이전부터 마음으로 흠모하고 있어 단 한 번의 만남으로도 충분했다고 그는 말합니다.
선생은 무위당 장일순의 생명사상 성격을 산업문명의 ‘욕망의 구조로부터의 해방’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마도 욕망의 구조로부터 해방된 세상에서 무위당 선생님을 만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위당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난 뒤 한참이 지나서도 선생은 무위당사람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애정을 주셨습니다. 2011년 4월 처음 시작해 1년에 두 차례씩 열린 무위당학교 제1기에서 김종철 선생님을 모시고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도 계간 <무위당사람들>에서 묵직한 글이 필요할 때,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는 글이 필요할 때, 언제나 선생님은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지난해 10월 무위당학교 특별강좌인 <근대한국의 생명사상을 찾아서>에서는 <무위당과 환대의 사상>이란 주제로 좋은 말씀을 들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오늘 제 강연의 제목이 ‘무위당과 환대의 사상’이잖아요. 생명사상을 저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환대의 사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간에 무조건적으로 친절하게 대하는 걸 환대라고 합니다. 그런데 환대는 철저하게 비근대적 개념이에요.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 모든 문명에 존재했던 민초들의 윤리예요. 엘리트의 윤리가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그렇습니다. 지금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은 에스키모, 아마존의 부족입니다. 거기가면 아직도 환대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와도 밥도 주고 재워주고 친절하게 대합니다. 우리 외가가 기와집이었어요. 대부분 초가집이었는데. 그 중에서 조금 넉넉했던 셈이죠. 어릴 때 기억으로 생면부지의 과객들이 가끔 드나들었어요. 제가 고향이 경남이거든요. 예를 들어서 진주에서 부산 가던 사람들이, 진주에서 터벅터벅 걸어가다가 장원 정도 오면 자야 하잖아요. 배도 고프고. 그럼 동네에서 좀 있어 보이는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그럼 그 집에서 근사하게 상을 차려주고 재워줍니다. 정말 인심 좋은 집은 노잣돈까지 조금 보태서 보내줍니다. 이런 풍습이 사실 제가 어렸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 때가 어떤 시절입니까? 6·25 전쟁 직후예요. 그 당시만 해도 시골인심은 그랬어요. 그냥 오랜 세월 동안 부모에게 배운 방법이에요. 자식들에게 내려온 습관이에요. 그래서 식민지, 전쟁, 이런 험한 세월을 우리끼리, 동포끼리 살아남은 거예요. 지금과 같이 인심이 갈가리 찢긴 시대에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우리는 다 몰살당합니다. 환대라는 게 생명사상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우리 무위당 선생님도 그 분을 기억하는 분들이 회상하기론 그럽니다. 만년에 주로 한살림 모임에서 얘기하신 내용 보면 결국은 환대예요. 사람과 생명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자. 이 얘기예요. 결국 환대예요. 환대라는 건 나를 낮춰야 해요. 지가 잘난 사람은 남 환대 못합니다. 저기에 있는 ‘저파비(猪怕肥)’라는 글씨인데요. 저 앞에 인파출명(人怕出名)이잖아요. ‘사람은 이름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 한다’ 이게 사실은 명문장가, 명사상가의 말이 아니거든요. 중국의 속담입니다. 민초의 지혜예요. 사실 문장 구성도 그렇잖아요. 돼지를 딱 갖다 대는 것 보십시오. 이건 그야말로 농사짓는 백성들의 감각으로 만들어진 속담이라는 걸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민초들이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무서운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인심도 그랬거든. 돼지가 살찌면 도살당하듯이 사람도 이름나면 반드시 남의 음해를 받고 공격을 받는 다는 얘기거든요. 세상의 인심을 직설적으로 얘기하고 있잖아요. 가식 없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민초들입니다.”
 
딱 한 차례 만남이었지만 무위당에 감복한 선생은 무위당이 남긴 서화와 강연 녹취록을 토대로 그의 사상을 압축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펴내기도 했습니다. 아주 특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두 분의 삶과 사상이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으니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영원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무위당 선생님 또한 원주를 찾는 모든 이들, 원주뿐 아니라 자택을 찾는 모든 이들을 환대해 주었습니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초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기도 했지요.
 
해월과 무위당의 생명사상을 말하다
 
2016년 3월 19일에는 선생의 안내로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 세 번째 답사여행이 진행됐습니다. <명사 70인과의 동행>(3) 이었는데, 무위당기념관과 묘소, 생가, 동학 교주 해월 최시형 피체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습니다.
선생은 답사단에게 무위당의 생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선생 댁인 봉산동에서 원주 시내까지 도보로 20~30분 거리인데 실제로는 두어 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손을 잡고 ‘어려운 일 없느냐’고 일일이 안부를 물어요. 길바닥에 조그만 소쿠리를 놓고 나물 파는 할머니 앞에 쭈그려 앉아서 안부를 묻고…. 노상 그리 사셨던 겁니다. 그런데 제가 무위당의 사상을 이해하려고 해도 전두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은 이해를 못하겠습디다. 적마저 사랑해야 온전한 세상이 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선거제도에 기반한 서양식 민주주의는 모든 이를 포용하는 게 아니라 서로 ‘잘났다’며 경쟁하는 시스템이잖아요. 늘 패자와 복수, 앙심이 생겨나 선거로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서양의 관점에서 보면 비현실적이긴 해도 이런 질문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올수록 길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김종철 선생은 이날 해월 최시형 선생 피체지에서 답사단에게 “농부의 피땀과 하늘과 우주가 도와줘야 밥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모든 생명이 희생하고 우주의 운행이 있어야 사람도 살고 밥도 생기는 것이지요. 무위당은 해월의 사상과 일맥상통합니다.”고 일러주기도 했습니다.
‘밥 한그릇 속에 우주가 있다’는 해월의 생명사상을 이어받았다고 본 것입니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지난 7월 경향신문 칼럼에서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돈이든 명예든 타인의 인정이라는 의미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결국 죽음을 향한 가벼운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을 염두에서 잃어버린 순간, 타락은 필연이다.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은 삶과 죽을 운명이라는 두 가지 조건의 길항에서 나왔다. 근대 문명에 이르러서는 이 ‘갈등의 균형(생각하는 능력)’은 박살나고, 죽음은 자연사(自然事)가 아닌 삶의 대척에 서게 되었다. 삶은 무의미하지만 이 진실을 의식하면서 살 수는 없으므로, 사람들은 의미라는 가상의 장치를 만들었다. 그런데 물질문명이라는 ‘의미’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더 큰 재앙을 대비하며 이 여름을 맞는다. 아수라의 한복판을 직시하던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세상이 망한 듯 나는 흐느껴 운다.”고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에 대한 슬픔을 전했습니다.
 
(사)무위당사람들의 모든 이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늦게나마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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