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9호] 28주기 특집-추모사 ‘무위당 묘소 앞에서’
등록자 관리자 등록일자 2022.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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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주기 특집-추모사 ‘무위당 묘소 앞에서’
 
무위당 묘소 앞에서, 최기식 신부님
 
무위당 선생님, 당신과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삶을 고백하고 떠나신 지 벌써 28년이 되었습니다. 3년 전 이 자리에서 미사를 한 후, 두 번째 영묘(寧廟) 인사드립니다. 죄송한 마음입니다. 선생님을 처음 대면한 것이 내게도 50년 전, 긴 세월이 지났습니다. 당신의 삶과 지혜를 본받고 가르침을 따르던 많은 분이 모이고 모이던 이 자리엔 여러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지 주교님, 병중에 계신 김영주 선생님, 작고하신 리영희(?) 선생님처럼 함께 하던 분들이 이 자리에 안 계십니다. 그들도 당신과 함께 계심을 믿으며 당신 영전에 마음 모아 말씀을 나누어 봅니다. 당신의 삶이 당신 자호에 나타남을 알기에 잠시 회상해 봅니다.
 
호암(猢岩)
이십 대의 당신께서 호를 호암이라 하셨습니다. 백두산 천지를 담은 젊음의 높은 이상, 당신이 그런 이상을 가진 젊은이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습니다. 높은 이상을 가진 당신을 따르려던 젊은이들 모이는 곳이었지요. 그 후배들, 그들이 지금 함께하고 있습니다.
 
청강(靑江·37세)
반독재,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으로 핍박받고 억울하고 한 맺힌 세대를 지나면서 당신은 청강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 욕되게 하고 핍박받는 자, 용서한다는 뜻이었나요? 사랑한다고. 미운 감정 푸른 강에 씻으라고, 당신 삶을 청강이라 하셨다지요. 여기 온 많은 분도 이 시대에 한 맺히고 억울한 이들이 많습니다. 당신의 모습 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변화시켜주는 것이 호였다고 하셨지요. 당신의 삶이 우리에겐 하나의 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물, 당신 영전이 푸른 강산에서 한과 미운 감정을 씻고 풀고 새로 추스르며 앞으로 갈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무위당(无爲堂)
80년대 초 50대 중반. 인생이 무르익을 때, 당신을 무위당이라 하셨다지요. 매사에 물 흐르듯 자유로운 삶, 욕심 없이 하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 끝없는 물욕 소유욕 권력욕, 그 지옥 같은 어둠에서 벗어나라는 것 아닙니까. ‘욕심도 적당히, 채우려 하지 마라. 큰 것을 바라면 객심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장일순 선생의 훈(訓)이었고 가정의 가훈(家訓)이었으니 모두의 훈이 돼야 하는 것 아닐까요. 비우게 되면 채워지고, 높아지려 하면 낮아지는 것. <엎드려 기어라 비워라> 한 것을 세상의 지혜로 어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일속자(一粟子)
일속자라는 당신의 호, 강의에서 자주 듣던 말이었습니다. 좁쌀 한 알. 좁쌀 안에 우주가 들어있고, 우주 안에 좁쌀 들어있다. 우리 인생과 신앙 안에 하는 말 같습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 하느님 안에 작은 내 생명. 우주의 존재 없이 내가 있을 수 없는 존재 의식을 알리는 것 아닐까요.
 
이암(夷庵)
‘평탄, 평범하고 보이지 않는다.’라는 뜻이고, 보이지 않는 집을 말합니다. 안 보이는 것 가운데 사는 것이 편하다 하셨지요.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지 않는 집을 말하는 걸까요. 몸뚱이가 집이라 하셨지요. 당신의 이 높은 지성을, 그리고 이 인격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요. 이 모든 호가 당신이 살아가며 노력하고 이겨낸 삶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도가 길이 아닌 게 없다고 하셨지요. 모든 종교의 진리는 결국 하나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진리의 삶을 섭렵하셨던 당신의 그 삶. 우리 모두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께서 제게 난을 그려주면서 제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기식의 터 기(基)자를 몸 기(己)자로 바꾸며 몸을 심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지요. 역지사지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라고, 일등만 생각하지 말고 꼴등 하는 사람도 생각해보라 하셨지요.
당신이 우리에게 어떤 삶을 원하는지를 이제 알겠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산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한말씀 하실 거라 생각되는데요. ‘야 이놈들아!’ 하고 큰 소리로 말입니다. ‘옷 잘 입음이 몸 잘남만 못하고, 몸 잘남이 마음 잘남만 하겠느냐.’ 이렇게 외치면서 우리의 마음, 우리의 자세, 정신적 신념과 의지를 받아 가게 해주시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마음이 적막할 때 당신께 자주 찾아와서 위로받고 생활의 지혜를 구했습니다. ‘지구의 생명, 자연의 생명. 죽어가며 외치는 비명소리. 억울해서 절망해서 외치는 탄식 소리 들리는가. 잘났고 저주만 외치는 죽은 사자들의 비명같이 들리지 잊지 말거라.’ 외치는 당신의 음성을 오늘 꼭 가슴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여기 있는 모든 이의 사랑과 정의, 일치와 평화를 몸에 심을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천상에서 당신이 구하는 하느님의 은총을 빕니다.
모든 종교를 종합한 진리, 당신의 삶 속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기도합니다.
다정한 당신 눈빛과 음성을 기억하며 존경의 인사 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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