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5호] 이인숙 선생님 추모 조사 '형수님 영전에 눈물로 바칩니다'
등록자 황진영 등록일자 2018.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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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당신은 우리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던 장일순 선생님의 부인이셨습니다.
어둡고 힘겹던 시절에 우리를 바르게 이끌어주셨던 지도자였고,
암흑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가도록 꿈과 희망을 주셨던 무위당 선생님의 부인이셨던 사모님을
지금 우리는 저 멀리 우리와 떨어진 곳으로 보내드리려고
작별하는 이별의 시간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작별하는 이 시간을 슬퍼하고 아쉬워하는데,
반대로 사모님은 오랫동안 헤어져서 슬퍼하던 나날을 벗어나
당신이 사랑하는 무위당 선생님을 찾아가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한 번 이 시간을 돌이켜보며 깊은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을 사모님이 아닌 보다 정겨운 이름으로 부르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수님,
당신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살림을 책임지고
항상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가정의 살림을 풀어나가셨습니다.
형수님, 당신은 꽃다운 청춘을 접어가면서 낭군의 체면을 높이 살리셨고,
가정의 질서와 체통을 바르게 이어가도록 헌신하셨습니다.
형수님, 당신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에게 높은 자긍심과 꺾이지 않는 희망으로
항상 푸른 마음으로 살아가도록 키워주신 분입니다.
 
형수님,
당신은 서울에서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나
전국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학교인 경기여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을 졸업한, 당대의 내로라하는 여성 지도자로 성장하셨습니다.
당시로서는 전국 어디를 가도 사범대학 졸업장만 제시하면 취직이 보장된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훌륭한 자격증을 보여도 강원도 원주에서는 별로 효과가 없었습니다.
강원도교육감은 이력서를 보고 기뻐하며 내일부터 춘천여고에 출근하라고 해놓고 저녁에 취소해버렸습니다.
이것은 교육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정치적인 벽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른바 연좌제 때문이었습니다.
 
형수님,
당신은 취직이 된다는 기쁨 속에 결혼식 때 신고 벗어서 잘 보관하던 수제 가죽구두를 신고 춘천으로 갔었는데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 구두로 학교 시멘트벽을 정신없이 얼마나 쳤던지 구두 앞부분이 다 떨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죄가 얼마나 컸는지는 몰라도 이해가 안됐을 테죠.
그때부터 교사의 꿈은 사치스러운 것이 되어 버리고 농촌 아줌마로 새 출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연좌제가 당신만의 화는 아니었습니다.
아들 셋이 군대에 입대하니 군은 더 조직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죠.
녹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감시 받고 반 감옥 같은 환경 속에 군 생활을 마치니 그 고생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가슴이 미어지는 엄마의 아픔을 안고 군에서 제대하기만 기다렸는데
제대한 뒤엔 취직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차별 속에서도 세 아들은 반듯하게 성장하여 이제는 사회의 커다란 재목이 되었습니다.
형수님의 공로가 너무나 크십니다.
 
형수님,
당신은 마법사도 아닌데, 무위당 선생님을 찾아 온 수많은 젊은이들을 문전박대하지 않았습니다.
오신 분들에게 차와 식사와 숙박까지 해결해주는 오아시스 같이 푸근한 안식처를 만들어주셨습니다.
형편대로 최선을 다해 따뜻하게 맞아준 형수님의 푸근한 보살핌 속에 무위당의 따뜻하고 인자한 지혜의 말씀은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겐 귀중한 인생 지침이 되었습니다.
형수님의 자애로운 노력이 큰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형수님,
형수님은 인생의 큰 시련을 거치셨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이 암으로 입원하고 수술 뒤 병증이 악화될 때 참으로 절망적이셨죠.
그런데 환자 당사자는 “지금 지구 전체가 암에 걸려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도 자연 의 하나인데 나라고 암에 안 걸릴 수는 없는 거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해 암과 싸우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안타깝습니다.
 
형수님,
형수님은 할 만큼 다 했습니다. 아들 삼형제 잘 키워서 사회에 번듯한 인재로 내놓으셨습니다.
어릴 때 영양실조로 제대로 먹이지도 못했다는 생각은 그만하셔도 됩니다.
아들도 엄마의 사랑을 모르지 않고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형수님이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하신 손녀들, 잘 컸습니다.
형수님이 벽에 손녀의 그림을 붙여놓고 그 재능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셨는데
이제 다 커서 자기 소질대로 제 길을 갈 것입니다.
 
형수님,
이제 다 내려놓으세요.
당신이 애써온 가족의 사랑도 더욱 발전할 것입니다.
손주 손녀들이 할머니의 사랑을 잊지 않고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제 25년 간 헤어져있던 무위당 선생님과 다시 만나 예전에 못 다한 사랑 나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안부도 선생님께 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저희들도 가게 될 테니 다시 만나는 시간을 기다려주세요.
형수님 그동안 참으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디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선생님 곁에서 더욱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형수님을 따르고 존경하면서도 늘 폐만 끼쳤던 동생이 삼가 눈물로 고합니다.
 
형수님이시어. 영원한 평화를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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