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8호] 생명협동문화제 교육포럼 '우리 교육을 살리는 생명·평화·협동정신'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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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을 살리는 생명·평화·협동정신
 
정리. 원상호
 
 
무위당 장일순 선생 25주기를 맞아 <우리 교육을 살리는 생명·평화·협동정신>을 주제로 한 교육포럼이 지난 5월 18일 원주역사박물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생명평화협동 정신을 오늘날 우리 교육 현실에 접목하고 계승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동과 청소년 교육을 비롯한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장 활동가들의 사례를 직접 들으며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을 고민하는 포럼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익록 강원도교육연구원 교육연구사를 좌장으로 김현아 로드스꼴라 대표교사와 김영연 한살림서울식생활교육센터 팀장, 이승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이 각각 이야기 손님으로 나섰다. 길 위에서 배우는 공부, 밥 교육의 중요성, 지금 이 시대 협동운동과 사회적 경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정리했다.
 
 
 
 
<원주여행, 길 위에서 만난 조 한 알 할아버지>
 
로드스꼴라 김현아 대표교사
 
로드스꼴라(Roadschola)는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여행학교입니다. 여행 속에서 철학과 인문학을 배웁니다. 로드스꼴라는 주 5일 동안 다니는 대안학교와 주말 로드스꼴라로 운영됩니다. 주말 여행학교는 공교육에 다니는 친구들, 학교 안다니는 친구들, 대학에 다니는 사람들, 혹은 대학에 안 다니는 청년들이 주말에 한 번 모여서 같이 여행을 하는 학교입니다.
 
첫 번째 토요일에 모여서는 여행을 가기로 한 곳, 예를 들어 원주로 가겠다면 원주의 역사와 문화 등 전체적인 감을 잡아요. 두 번째 주에는 여행을 같이 기획하고, 세 번째 주에는 여행을 하고, 네 번째 주에는 여행한 것에 대해 글을 써서 책을 냅니다.
 
원주에 와서 발표를 하는 것은 무위당 선생님에 대한 것이었는데 맨 먼저 원주를 왔던 것은 아니고 동학에 대한 어떤 루트를 거치면서 왔어요. 동학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을 할까 했을 때, 동학은 조선 말에 일어난 혁명이기도 한 것이라서 왜 조선 말 사람들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고, 혁명을 하게 됐는지 보기 위해서 서울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꿈을 가지고, 누가 세우게 됐는가란 이야기를 먼저 들여다봤습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익숙했던 것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광화문의 뜻은 무엇인가, 경복궁의 뜻은 뭔가, 그리고 경복궁 안에서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맨 처음 세운 사람들이 가졌던, 새로운 나라에 대한 꿈같은 것들을 만들어 놓은 현판 같은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5세기 동아사아에서 가장 인문적이고, 어떻게 보자면 민주적이고, 어떻게 보자면 나름대로 인권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고 그것을 실현했던 나라가 조선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15세기 조선을 보고 다음은 전북 정읍으로 갔습니다. 사실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부터 시작하려면 경주부터 가야하는데 경주를 가기는 조금 바빠서 그러지 않고 ‘동학 이야기 길’의 시작인 정읍을 갔습니다. 정읍을 가서 보면 동학의 메카 같습니다. 백산면이란 곳은 아주 작은 면 소재지인데 동학과 관련된 이야기가 남아있는 것은 물론 현재도 그것을 계승해 나가는 그룹들이 남아 있습니다. 가기 전에 책을 읽고 갔는데, 이광재 작가가 쓴 「봉준이 온다」라는 텍스트입니다. 일단 정읍에 가면 동학의 흔적들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백산성도 남아있고 말입니다. 여행학교니까 백산 같은 곳에 가면 무엇을 할까? 현장에 가면 이 친구들하고 뭘 했을 때 현장에 대한 이해를 잘할까? 생각합니다. 공부와 현장이 만난다는 것은 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잖아요. 이광재 선생님을 만나 강의를 먼저 듣기도 하고, 둘째 날은 현장을 다녔고 백산에서는 동학 관련 운동회를 했어요. 전봉준 팀 등으로 나눠서 말입니다.
 
머리띠에는 동학의 경전 중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말을 씁니다. 사인여천(事人如天), 시천주 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이천식천(以天食天), 인내천(人乃天) 등을 써서 머리띠를 두릅니다. 백산은 동학군들이 모여서 서울로 가기 전 에너지를 모았던 곳이기 때문에, 우리도 여기서 그 때 그 사람들만큼 에너지를 올려보자는 맥락에서 놀아보았습니다.
 
11월에는 전주를 갔습니다. 전주성은 동학군이 들어가면서 쾌거를 올렸던 곳이잖아요. 이때 전주동학영화제 즉 시천주영화제라고 하는 영화제가 열렸습니다. 2박3일 동안 학생들이 영화를 찍어 와서 그 영화를 마지막 날 밤에 상영하면서 놀았어요. 11월의 텍스트는 「해월의 딸 용담할매」 였습니다. 고운광순 선생님이 동학언니들이란 그룹을 만들었는데, 왜 동학 이야기 속에는 남자들만 나올까? 고민했어요. 당시 동학은 모든 것이 하늘이라며 굉장히 혁명적인 사상을 펼쳤잖아요. 최제우가 맨 처음 한 일도 자기 노비를 해방하는 것이었고요. 동학에 가장 매혹되었던 사람은 오히려 그 당시에 가장 하층민이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중에 여성들이 굉장히 많지 않았을까? 그런데 왜 동학의 전면에 드러나는 인물들은 모두가 남성일까? 궁금증이 생긴 것입니다.
 
정읍에 가서 보면 동상이나 동학농민 전쟁 중에 죽은 사람들과 싸운 사람들 100여 명을 형상화해 놓은 것이 있는데 100% 남자입니다. 동학이야기 속에는 단 한명의 여자도 나오지 않을까란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월의 딸 용담할매」 같은 경우는 최시형 선생의 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재미있고,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 이 노래가 최시형의 외손자가 만든 노래였습니다. 최시형 딸의 아들이 방정환과 같이 일본 유학을 가는 과정에서 졸업식 노래를 만들었어요. 최시형의 딸인 그 용담할매가 어떤 식의 삶을 살았는지 이 책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공주에서는 우금치를 갔습니다. 동학 농민군들이 많이 죽었던 학살터에 가서 학생들이 퍼포먼스도 했습니다.
그 다음 원주에 왔습니다. 동학의 이야기를 따라서 온 곳이 바로 원주입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사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이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원주에 왔는데 원주에서는 당연히 무위당학교에서 저희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이 살고자 했던 삶은 어떤 삶인데, 그 아저씨하고 나하고는 무슨 상관이 있지? 나는 왜 오늘 여기에 와서 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라는 질문을 계속하는 거죠. 원주에 와서 고진하 시인도 만나고, 언니들협동조합도 가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일순씨의 얼’입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일순 씨의 얼이라면 장일순 선생님이라고 생각을 못해요. 학생들이 원주에 갔다와서 만든 노래가 이 노래입니다.
 
<일순 씨의 얼>
 
그대와 내가 저 들꽃과 쌀 알
모두가 한울님이네
하늘과 땅 저 태양과 바람
모두가 한울님이네
혼자만 잘 사는 건 의미 없네
스스로를 낮추고 풀잎을 스승으로
그대가 나라는 걸 이제야 알았네
내 곁에 있던 우주를 찾았네
쌀 한 톨에 농부가 있네
쌀 한 톨에 우리가 있네
쌀 한 톨에 우주가 있네
쌀 한 톨에 만물이 있네
 
 
 
< 한살림서울식생활교육센터의 밥 교육과 운동 >
 
김영연 한살림서울 식생활교육센터 팀장
 
한살림서울식생활교육센터가 어느 순간 생긴 것은 아니고 2011년 한살림서울이 농림부식생활교육지원센터로 지정되고 지난해 한살림서울식생활교육센터가 서울시 지정을 받았습니다. 2017년 제가 오자마자 그동안의 한살림 사업을 모아 모아 서울시에 제출했는데 저희가 지정이 되면서 서울시가 함께 파트너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저는 서울시식생활센터에서 국장 역할을 하면서 국제 심포지엄 등을 기획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본격적으로 한살림 일을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협동조합은 교육과 사업, 운동과 사업이 연결돼서 협동조합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맨 처음 와서 보니까 식생활센터가 식생활위원회와 같이 연결돼 있어서 이중화 되어 있었어요. 센터는 보다 전문적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저는 인식되었고, 위원회는 조합원들이 밥 교육도 하고 장난놀이도 하고, 농촌에 식구도 데려가는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했던 일들은 진보 교육감이 들어선 것처럼 지자체도 진보적 성향의 단체장들이 들어섰잖아요. 그 사람들이 귀를 열고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죠. 이전에는 먹거리와 관련된 사업이 굉장히 적었는데 올해는 먹거리와 관련된 사업이 490억 원입니다. 그래서 센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찾아보면서 입찰도 하고, 용역도 하면서 식생활센터가 사업부서에서나 하는 일들을 병행했어요. 운 좋게도 7,000만 원, 5,000만 원이 선정됐습니다. 조직에서 지원을 받지 않고 식생활센터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1억 원이 넘는 사업들을 진행하게 됐습니다.
 
문제는 조직의 역량이었습니다. 센터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는 저와 두 분의 활동가 3명인데, 활동가 두 분이 이런 지자체 사업을 처음해보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서류 꾸미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너무 어려운 겁니다. 그래도 지난 경험을 되살려 1억1,500만 원 사업들을 조합원, 일반 시민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 사업을 통해 일반 시민참여자가 1만3,000명, 교육 참여자가 1만4,506명, 아이돌봄 이용건 수 80건, 한살림물품이용액 5,900만원을 소비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강사 양성만 할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의 진로나 그 분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생겼습니다. 초기에는 30~40명이 있지만 지금 활동하고 있는 강사는 20명도 채 안되었는데, 논살림 센터가 들어와 올해 100명 정도의 활동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하는 활동은 많습니다. 서울에 25개 자치구가 있는데 곳곳에 활동가들이 분포돼 있습니다.
 
저희가 하고 있는 구체적인 일은 서울시와 친환경급식 관련 일을 하고 있는데 이분들이 모두 학부모들이세요. 학부모들에게 왜 친환경급식이 중요하고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먹는 것이 오는 게 아니라 서울시 아이들은 이런 걸 먹고 있는데 이런 어려움이 있다고 생산지를 데려가는 프로그램을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350여 명의 이분들을 멀리 데리고 가서 모니터링하면서 어떻게 학교급식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교육합니다.
서울시가 국가보다 먼저 공공급식이라는 먹거리 마스터플랜을 세웠습니다.
 
한살림서울 같은 경우에는 친환경급식을 제일 먼저 도와준 단체이기도 하죠. 문래초등학교에서 한살림에 부탁해서 처음 친환경 급식을 했던 이력도 있고, 그런 활동의 내력도 가지고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이 했던 공공급식은 지역아동센터와 어린이집 등 공공적인 영역에 어떻게 생명의 먹을거리를 먹게 할 것인가에 대한 사업들인데 이 사업도 한살림이 합니다. 교육을 하는데 식생활 활동 활동가들이 교육을 합니다.
 
예산과 관련되는 것입니다. 활동가들이 할 수 있는 일,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것 중에 지역 자치가 늘면서 먹거리 영역 예산들을 활동가나 이런 분들이 찾아내서 지역 주민에게 돌리는 사업들을 해서 이번에 발표했습니다. 특히 학교 밖 아이들, 아이를 가진 엄마들, 특수학급, 중학교 자유학기제부터 시작해서 식생활 관련 교육에 대한 요청이 많이 와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맥락을 활동가들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교육 현장이 왜 변하고 있는지 그래서 서울시교육청 혁신교육과 관련된 내용들을 활동가와 조합원들에게 교육을 하고 있어요. ‘거기와 관련된 교육의 변화, 이거와 맞는 식생활한살림은 이렇게 해요’ 그러면은 초등, 자유학기제, 특성화된 수업이 필요할 때, 직업교육 등 영역별로 프로그램화 수업을 합니다.
 
서울시교육청 평생교육과 장학사님이 음식과 요리야 말로 평생 배워야할 교육이 아닌가라고 해서 교육지원청 동서남북 다 흩어져서 한살림모임방으로 연결되어서 했어요 그리고 광화문에서 서울시교육청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했는데 다행히 부교육감이 한살림 조합원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요리에서 차이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데, 같은 음식을 줘도 다 다른 것 아시죠? 요즘 ‘차이의 교육’을 교육의 또 다른 창의력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요리교육이야 말로 차이의 교육입니다.
 
학교가기가 예전보다 굉장히 어려워졌어요. 세월호 이후 안전에 대해 강조되면서요. 강사 분들이나 모든 분들이 안전교육 이수를 받으셨습니다. 한살림의 어떤 교육에 들어와도 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깨어 있으라’ 이야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떤 것들이 불확실성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어떤 교육이 들어올지 몰라서 공부하지 않으면,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렇기에 모두 공부하고 있고, 대학원을 가겠다고 하는 활동가들도 생겼어요. 내적인 자기 의지나 자존감을 느낄 수 있고 자기 실현을 하는 과정과 운동과의 조화를 매치시키는 활동을 병행하고 있고요.
 
한살림은 ‘다시 밥’ 운동을 하겠다, 밥 운동을 가지고 사회화로 적극성을 끌어내겠다는 것입니다. 농업의 가치와 협동의 가치와 더불어 사회가 함께할 수 있는 영역들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이 중요한데요, 교육도 결국은 사람의 변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려는 운동이기 때문에 센터가 말하는 것은 연결과 관계성(Relatedness)을 고려한 교육입니다.

한살림이 생각하는 밥 교육의 의미는 일단은 구성원들이 내적 동기를 가지고 내적 성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 두 번째는 조직의 구심력을 높이는 외연을 통해서 밥 교육과 밥 운동을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사업과 활동을 통해서 조합과 끊임없이 협동조합 운동의 원칙을 지켜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비전과 내용이 항상 기준점이 되도록 일치시키는 운동들을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생산과 소비를 넘어 삶을 생산하고 저희가 교육을 생산해서 한살림 교육도 이제 유기농 교육 아니면 자연 친화적인 교육 이런 것들을 확대해서 외부에 있는 많은 기관들이 선택해서 사서 교육의 밥을 드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대한 밥의 주제, 밥의 운동의 내용을 끊임없이 공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교육은 사실은 사람을 바꾸고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와서, 그렇기 때문에 교육이 굉장히 중요하고, 이 분위기 좋은, 이 지구의 시대에 물들어 올 때 노 저으라고 말입니다. 한살림이 어떻게 더 잘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주의 사회적 경제 교육 현황과 제언>
 
이승현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사무국장
 
문 정부 들어와서 사회적 경제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를 찾는 곳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고, 역할도 많아졌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는 도대체 협동조합은 무엇이고, 사회적 경제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무위당사람들이 생명협동교육관에서 뭔가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사회적 경제 교육 현황을 살펴보면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2017년 114개 기관이 모두 321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교육 인원은 5만8,000여 명이었습니다. 주요 내용은 기초 소양교육과 사회적 경제 기업 창업 위주 교육이 제공되었습니다. 종사자 역량 강화 교육은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사회적 경제 조직 종사자 18.6%만 교육에 참여하는 등 리더 육성 기반이 취약했습니다.
 
- 원주지역의 사회적 경제 교육 현황
 
원주에서는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와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 무위당학교가 있고, 새움 사회적협동조합과 큰나무 사회적협동조합이 있습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협동조합의 협동조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는 사회적 경제 조직 육성 교육을 하고 있는데 사회적 경제 교육과 협동조합 교육 방향과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많이 부족합니다. 신규 신입 실무자 교육을 하고 해외 연수도 합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사회적 경제 교육을 합니다. 이와 함께 원주 사회적 경제 기업 청년 취업 멘토스쿨을 협업으로 운영하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설립 지원을 교육하기도 합니다.
새움의 경우 사회적 경제 창업과정을 통한 여성진로지도강사 양성 교육은 물론 청년 ‘사회적 경제’ Log-in 교육, 청년 ’사회적 서비스‘ Log-in 교육을 합니다.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사회적 경제 교육도 진행합니다.
 
큰나무 사회적협동조합은 초등학생 사회적 경제 강사 양성, 대학생 사회적 경제 강사양성 교육을 실시합니다. 경력단절 여성 및 미 취업 청년강사 양성교육도 함께 합니다.
 
- 캐나다 ‘안티고니쉬’ 협동운동
 
안티고니쉬 운동은 1930년대 초 대공황기 캐나다 동부 안티고니쉬 지역 세이비어 대학 톰프킨스 신부와 교도부 경제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 수많은 여려 유형의 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발발로 주춤했고 전후 협동조합들은 지속적으로 쇠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 개발도상국들은 전후 안티고니쉬 협동조합을 배우고 돌아가 협동조합 설립 등 전 세계 확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안티고니쉬 협동조합의 운영체계는 대학교수들이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현장 직원들이 정책을 실행하며 자원봉사자 등이 현장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합니다.
 
코디 연구소는 1959년 안티고니쉬 운동 지도자 코디 박사 사망 직후 세이비어 대학 내 설립되었으며 국제적으로 수많은 협동조합인들을 양성했습니다. 한국 협동조합계 원로 상당수도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안티고니쉬의 성공 요인은 지도자들의 비전과 체계적 전략 및 강력한 리더십을 꼽을 수 있습니다.
 
또 캐나다 동부 지역사회의 동질성을 비롯 세이비어 대학, 카네기 재단, 록펠러 재단 등의 재정 지원, 세이비어 대학 교도부의 학계와 지역사회 연결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연방 정부와 주 정부, 대학본부의 협조와 적극적인 지원, 지도자들의 개방적인 태도인데, 인종과 종교, 직업의 차이를 뛰어넘는 협동 운동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결과입니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간선인 안티고니쉬 방식의 협동조합, 지역대학의 예산과 인력의 적극적인 지원을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으로 세이비어 대학 교도부는 정부의 자금지원이 축소되고, 현장 지도인력 및 자원봉사자들의 군 입대 등으로 줄어들면서 쇠락의 길을 걷습니다. 주 정부의 교육정책 변화로 싱크탱크 역할을 해 줄 교수 진도 점점 줄었고, 전쟁 중 세이비어 대학 교도부와 협동조합들 간 관계도 서서히 멀어져 1960년대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면서 싱크탱크의 역할이 사라집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점은 협동조합의 확산과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상황에 적합한 전략이 필요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력, 특히 씽크탱크가 지속적으로 유지 공급될 수 있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 사단법인 무위당사람들의 역할과 방향
 
무위당사람들은 원주 사회적 경제 운동의 씽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구자들의 생명협동사상을 연구 분석해 현장의 사회적 경제 조직 관계자들이 학습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원주지역 내 사회적 경제 교육 기관들과도 강사 양성 과정(커리큘럼, 강사 등), 교육컨텐츠 개발 과정에 역할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원주를 중심으로 한 1965~1990년대 협동운동을 조사 분석 연구, 코디연구소와 같이 선구잗르의 생명협동운동 사상을 전국적으로 전파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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