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4호] 쉬어가는 페이지 - '無'가 보이느냐?
등록자 황진영 등록일자 201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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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가 보이느냐?
                                    
 
 
원주서예가 湖山 蔡熙昇
 
 
1982년 어느 날, 원주 합기도 흑추관에서 무위당과 차를 한 잔 하고 있었다.
 
무위당과는 여러 해 동안 도장에서  수시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
 
웬만한  이야기는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중 무위당은 느닷없이 화분에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집어들고는 내게 묻는다.
 
 
" 이게 무엇이냐 ?"
 
" 예, 꽃입니다."
 
" 네 눈에는 이것이 꽃으로 보이느냐?"
 
"예, 선생님. 꽃입니다."
 
"그럼 이 꽃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예,  꽃이 허공에 뿌리를 내리고야 피어날 수 있겠습니까.
꽃은 땅이 있어야 나오지만, 거름도 주어야 하고 햇빛, 달빛, 물과 온도 등등 온갖 것이
모두 갖추어져야지 꽃이 필 수 있습니다."
 
" 그래. 그럼 내가 다시 묻겠다. 이것이 무엇이냐?"
 
" 예, 선생님. 거름이라고 해도 되고, 우주라고 해도 맞을 것 같습니다."
(一花之中天地: 한 송이 꽃에 천지가 들어 있다.)
 
"그래, 네가 이젠 꽃을 보고도 꽃 아님(無)을 볼 줄 아는구나."
(不取外相 : 바깥 형상에서 취하지 말라. 곧 형상 넘어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꽃이 어떻더냐?"
 
"예, 아주 예쁩니다."
 
"그래, 그럼 너는 거름도 예쁘더냐?"
 
"예, 선생님, 큰 공부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나를  원주 기독병원 앞에 있는 '천하태평'이라는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에 들어서자 벽에는 무위당의 서예작품들이 여러 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작품 하나가 있었다.
 
'無'(없을무).
 
딱 한 글자 없을 무(無)만으로 작품을 한 것이었다.
 
기가 막힌 내공이었다.
 
밥 먹는 식당에 어떻게 저런 작품을 내 놓았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용히 식사를 마치자 무위당이 한 마디 한다.
 
"얘, 거름밥이 어떻더냐?"
 
"예, 선생님, 거름도 맛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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