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9호] 한묵청연 맑고 그윽한 향기 10리에 퍼진다(香聞十里)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서예가 김옥려 님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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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청연
 
맑고 그윽한 향기 10리에 퍼진다(香聞十里)
-대한민국 미술대전 수상 서예가 김옥려 님
 
글. 심상덕 무위당기념관장
 
 
 
인적이 끊긴 심산궁곡에서 청초한 잎새 사이로 수줍게 밀고 올라온 꽃대궁, 바람이 건듯 불 때마다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꽃의 은은한 향기가 십리 밖까지 전해질 것만 같은 한 폭의 묵란(墨蘭).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문인화로 두 번이나 입상한 서예가 김옥려 님이 40여 년 간 소장해온 무위당 선생의 난초화다.
 
김옥려 님은 원주 출신으로 나전칠기의 명장 김봉룡 선생(金奉龍, 1902~1994)의 딸이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작품을 만드는 것을 보고 자란 그는 한 때 나전칠기를 배워 아버지의 뒤를 이을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평생 남편이 고생하는 것을 봐온 어머니가 딸만은 절대로 이 일을 시키지 않겠다며 극구 반대했다. 6남매 중 둘째 오빠가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다. 그런데 오빠도 중간에 병으로 그만 두게 되어 가족 중 누구도 아버지의 뒤를 잇지 못했다. 다행히 김봉룡 선생의 수제자인 옻칠장인 이형만 선생이 뒤를 잇고 있다.
 
생전에 무위당과 김봉룡 선생은 친분이 두터웠다. 김봉룡 선생의 고향은 통영인데 좋은 옻을 찾아 원주에 정착하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무위당과 소중한 인연을 이어갔다. 일찍이 무위당 작품의 예술성을 알아본 김봉룡 선생은 무위당의 서화를 나전칠기 작품으로 완성했고, 공동으로 작품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두 분이 함께 작업을 많이 해서 그런지 무위당 작품을 찾아 전국을 다니다보면 무위당 작품 있는 곳에 김봉룡 선생의 작품이 있고, 김봉룡 선생 작품을 찾아가면 그곳에 무위당 선생님 작품이 있는 경우가 있다.
 
김옥려 님은 어렸을 때 집으로 찾아온 무위당 선생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무위당 선생님이 아버님과 친하셔서 집에 자주 오셨어요. 놀러도 오셨고 아버님과 작품에 대해 의논하러 오시기도 했어요. 그땐 제가 어렸으니까 그저 인자한 아저씨가 아버님과 아주 친한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죠. 어떤 날은 아버지를 따라서 봉산동 댁에 간 적도 있어요. 사모님이 저를 엄청 귀여워해주셨어요. 무위당 선생님이 집에 오시면 아버지 작업실에서 두 분이 차를 드시면서 몇 시간 동안 두런두런 얘기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두 분의 예술적 기질과 감성이 아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무위당 댁을 찾은 김봉룡 선생(1989년)과 무위당의 서예를 나전칠기로 형상화한 작품

 
무위당은 살림이 넉넉지 못한 김봉룡 선생을 돕기 위해 애를 많아 썼는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김봉룡 선생이 병원에 입원했던 일이 있었다. 가난한 살림에 병원비가 걱정이었다. 그것을 알고 무위당은 제자를 불러 “김 선생님 작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 ooo소아과에 갖다 주어라”라고 말했다. 무위당과 그 병원 원장과는 이미 얘기가 돼있었다. 제자가 작품을 갖다 주자 원장은 돈이 든 봉투를 주었다. 그것을 병원에 있는 김봉룡 선생에게 전했다. 무위당이 김봉룡 선생과 공동으로 작품을 만든 것도 김봉룡 선생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 공동작업을 통해 무위당은 김봉룡 선생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왔다.
 
김옥려 님은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면서 원주를 떠났고 그 이후로 계속 서울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주를 떠났지만, 부모님이 원주에 사셨으니까 자주 왔다갔다 했습니다. 제가 작업하는 방에 걸려있는 향문십리(香聞十里: 향기가 십리에 퍼진다.)는 1980년에 무위당 선생님께서 제 결혼 선물로 주신 작품입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핀 난초는 누가 봐주거나 알아주지 않아도 그윽한 향기를 품고 있듯이, 세상에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김옥려 님은 뒤 늦게 서예를 시작하여 2011년에 국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10여 년 전부터는 문인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문인화를 많이 그리다보니까 붓글씨 쓰는 일을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무위당 선생님의 서예작품이 천 점이 넘잖아요. 먹 쓰는 게 쉽지 않은데, 그 많은 작품을 쓰신 걸 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집안 곳곳에 부친 김봉룡 선생의 나전칠기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중 무위당 선생의 글씨를 김봉룡 선생이 나전칠기로 새긴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投我以桃而報之 以李: 투아이도이보지이리), 복숭아를 보낸 보답으로 오얏을 보낸다는 뜻으로, 내가 은덕을 베풀면 남도 이를 본보기로 삼는다는 의미가 담긴 작품이다.
 
“제가 아버님 나전칠기 작품을 여러 점 갖고 있는데 투자를 많이 한 겁니다.(웃음) 아버님이 고생을 해서 만든 작품을 거저 달라고 할 수가 없고, 아버님도 주시는 법이 없으셨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돈을 모아서 샀어요. 직장 상사가 아버지 작품을 갖고 싶어 한다는 등 다른 사람이 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서 샀어요. 저기 보이는 빨간 화초장과 자개상 하나만 결혼 선물로 받았고 집에 있는 나머지 작품들은 제가 산 것들입니다”
 
김 여사가 그윽한 눈길로 선친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희 남매가 6명인데 누구도 아버지 뒤를 잇지 못했어요. 원주에서 제자인 이형만 선생님이 그 일을 평생 하고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며칠 뒤에 원주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 이형만 선생님 댁에 들리려고 해요.”
인터뷰가 끝나자 김 여사는 집에 있는 작품 3점을 무위당기념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제가 갖고 있는 작품을 유용하게 사용할 곳에 기증하고 정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위당 선생님이 결혼 선물로 주신 ‘향문십리(香聞十里)와 선생님과 아버지가 함께 만든 옻칠 자개 작품 두 점을 드리겠습니다. 제가 보관에 신경을 써서 상태는 좋습니다. 무위당기념관에서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날 오후 기증 받은 작품을 싣고 원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향문십리(香聞十里)’의 깊은 뜻을 음미해보았다. 심산유곡에 핀 난초의 향기가 10리 밖에까지 전해지 듯이 세월이 흐를수록 무위당 선생에 대한 존경과 그리움의 향심(向心)도 그만큼 깊어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가 알리요, 그윽한 난초의 푸르름과 향기.
세월이 흘러도 은은한 향기 변치 않는다네.
세상 사람들아, 연꽃이 더 좋다 말하지 마오.
꽃술 한번 터뜨리면 온갖 풀의 으뜸이오니. (허난설헌의 ‘蘭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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