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1호] 한묵청연 모든 이웃의 벗 최보따리 선생님을 기리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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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청연◆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
 
 
 
徐廷綠(서정록) 도우에게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추모비를 세운데 대해서 몇자 적어주기를 부탁해서 몇마디 적어보냅니다.
원주에 계시는 치악고미술동우회 회원님들이 모두 12명이예요. 작년 4월엔가 봅니다. 모임에서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추모비를 세우는 것을 회원님들에게 제언했습니다.
 
원주군 호저면 고산리 송골(松谷) 원진녀 씨 집에서 경병에게 체포되신 지 금년이 92년 됩니다. 선생께서 동학에 입도하시고 체포되어 순도하시기까지 만삼십칠년이나 되는데 파란만장한 일생을 끝내게 되는 원주군 호저면 고산리 송곡(송골) 동구에다가 선생님의 거룩한 일생을 기리는 비를 세우고 싶었던 것이예요. 그래서 동우회 회원님들이 각기염출(各其斂出)해서 세우게 됐는데 바쁜 중에도 몸으로 거들어야 할 흙일과 환경작업 등 고마웠어요. 더더욱 회원각자는 천도교신도가 아니라 천주교신자, 기독교신자, 불교신자, 유교를 받드는 사람도 있어요. 요는 예수님이 기독교신자만의 예수님이 아니라 모든 이의 예수님이고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든 중생의 부처님이지 불신도들만의 부처님이 아닌 것처럼 우리 해월 최시형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모든 이의 선생님이시더란 말이예요.
 
그래서 이번 선생님의 추모비 건립이 지난 4월12일에 있기까지 잘 진척이 되었어요. 더욱이나 원주군수 이돈섭님, 원주군번영회장 배자옥 씨, 부회장 이영철 씨, 그리고 호저면장 장학성 씨 그리고 고산리 이장님, 동리 사시는 여러분들이 협조적이었어요. 참 고마운 일이지요. 이 겨레와 가난하고 어려웠던 농민들에게 신명을 바쳐 거룩한 일생을 보내신 선생님을 기리는 일에 누구하나 거역(拒逆)하는 이가 없었다는 것은 얼찐 생각하기에는 당연하다 하겠으나 거룩했던 선생님의 일생의 하신 일에 죄명을 씌워 죽였던 일을 생각하면 세월의 변화를 알게 되지요.
 
지난 4월12일(1990년) 추모비 제막식에 오셨던 분들은 아시는 일이지만 못오셨던 분들을 위해서 몇마디 적습니다.
비석의 본면이 되는 맨위의 비면(碑面)은 가로가 사척오촌(四尺五寸) 세로가 이척오촌(二尺五寸)입니다. 앞면은 경사 오십도각으로 되었고 뒷면은 수직(垂直)입니다. 옆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인테 오석(烏石)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면에는 「모든 이웃의 벗 崔보따리 선생님을 기리며」라고 씌여 음각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다시피 해월 선생님은 삼경(三敬)을 설파하셨어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이치를 볼 때에 인간과 천지만물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한울님으로 섬기고 공경하시고 가셨기에 모든 이웃이라는 말로 하였고, 벗이라는 말은 삼경의 도리로 볼 때에 선생님께서는 도덕의 극치를 행하셨기 때문에 일체와의 관계가 동심원적(同心圓的) 자리, 절대적 자리에 서 계셨기 때문에 벗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崔보따리라는 말은 방방곡곡 어디를 가시나 지극히 간단한 행장으로 보따리를 메시고 다니셨기에 일생을 지긋이 한 자리에 머무실 수 없이 설법하시고 민중들과 같이 하셨으므로 崔보따리라고 했습니다.
 
뒷면에는 선생님의 생년과 나신 장소, 동학에 입도하시고 도통을 수운 선생님으로부터 이어받으신 날짜, 체포되신 날짜와 장소, 그리고 순도하신 일자와 곳, 끝으로 간단한 선생님으 일생을 말하는 몇 마디가 있습니다. 옆면에는 김대호 글 짓고 장일순 쓰다, 치악고미술동우회 세움, 건립일자가 각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석비(烏石碑) 밑으로 중태(中台)가 오촌(五寸) 두께의 화강암으로 되어 놓여 있으며 하태(下台)는 육톤 무게 나가는 크기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는데 넓이가 육척이촌오분(六尺二寸五分)이고 높이가 이척이촌(二尺二寸)입니다. 이 하태 전면에는 「天地卽父母요 父母卽天地니 天地父母는 一體也니라 海月 先生님 法說에서」라고 각되어 있습니다. 이 한마디 법설에는 해월 삼경의 도리가 다 들어 있고 이렇게 하태 전면에 쓰게 된 것은 산업문명에서 탈출하여 앞으로의 지구 나아가서 우주의 일체의 존재가 공생할 수 있는 도리가 여기에 있음으로 이렇게 써서 각했습니다.
 
이번 추모비 제막에는 해월 선생님의 증손자인 최정간(崔楨幹) 씨가 하동(河東)에서 오셔서 참석해 주어서 각별한 기쁨이 있어요. 많은 분이 오셔서 선생님을 기려 주셔서 고마웠어요.
1990년 4월 17일 장일순.
 
 
해월 선생님은
  선생님은 포덕진 33년(단기 4160 서기 1827년)3월21일 경주동촌황오리에서 출생하셨다. 성은 최요 이름은 시형이며 호는 해월이다. 포덕2년(1862년) 용담에서 동학에 입도한 후 2년만인 포덕4년(1863년) 8월 14일에 최수운 선생님으로부터 동학의 도통을 이어받으셨다. 포덕37년(1898년) 4월 5일 원주군 호저면 송곡(송월) 원진여의 집에서 경병에게 체포되어 이해 6월2일 좌도난정률로 한성감옥에서 교형을 받아 순도하시니 향년이 72세였다. 
사후 9년 뒤인 포덕48년(1907년) 7월 정부명의로 선생님의 무죄임이 공포되었다. 선생님의 최보따리라는 별호는 작은 보따리를 가지신 행장으로 방방곡곡을 찾아 민중에게 겨레의 후천 오만년의 대도를 설하시고 그들과 함께 항상 일하시면서 동고동락하셨기에 민중들이 선생님을 부르던 애칭이다. 1990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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