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2호]한묵청연 '말 없는 돌에서 배워라'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0.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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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청연
 
‘말 없는 돌에서 배워라’
-애석인(愛石人) 김일남 전 상지여중 교장
 
 글 심상덕 무위당사람들 이사장
 
 
 
무위당 선생의 서화 작품 중에는 돌을 주제로 한 작품이 더러 있다.
‘계벽석생처 청산운기시(溪碧石生處 靑山雲起時·시퍼런 시냇물 흐르는 곳으로 돌이 삐죽 튀어나온 곳, 푸른 산 위로 구름이 일어나는 때)’처럼 선생의 자연애(自然愛)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난세다언 석화기중(亂世多言 石話其中·어지러운 세상 말이 많으니 그 중에 돌조차 이야기 한다)’은 33년 전 대학생 박종철 군을 물고문으로 숨지게 한 전두환 군사정권 폭거가 극에 달했던 1987년 초겨울에 쓴 작품이다.
1987년 어느 날 무위당 선생 댁에 수석전문가가 방문했다. 선생은 전문가가 보기에 수석이라 할만하지도 않은 돌을 보여주면서 “자네 내 마음의 돌 한 번 볼래?”하면서 돌멩이가 그려져 있는 화선지 위에 난을 치고 ‘석불능언 시아사(石不能言 是我師)’라는 화제(畫題)를 썼다. ‘돌은 말이 없으되 나의 스승이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하찮은 미물에서도 배울 것이 있으므로 자연에 있는 모든 물상을 존중하라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선생의 서화작품 중에서 수석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다.
 
원주시 명륜동에 살고 있는 김일남 선생(78세, 전 상지여중학교 교장)은 30여 년의 세월을 수석에 취미를 붙이며 살아온 수석애호가이다. 자신의 호(號)를 ‘청석(靑石)’으로 지은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돌에 조예가 깊고 돌을 즐기는 애석인(愛石人)인지 짐작할 수 있다. 수석 수집광 소리를 들었던 젊은 시절에는 전국으로 탐석여행을 다니며 찾아낸 3천여 점의 수석들이 마당에서부터 거실과 방, 옥상까지 가득 차 있었다. 이렇다보니 부인으로부터 “당신은 돌과 결혼했냐? 제발 돌을 집에 그만 갖고 오라”는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칠십대 후반인 지금은 그 많던 수석을 대부분 정리하고 애지중지하는 수석 몇 점만 집에 남겨 두었다. 무위당 선생의 서화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김 선생의 아파트 거실에 들어서자 영겁의 세월 동안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나가면서 독특한 자태를 만들어낸 진귀한 수석이 눈에 들어왔다.
 
김일남 선생이 무위당을 만난 것은 치악수석회 회원으로 활동할 때였다. 1980년대 초반에 무위당은 치악수석회 고문을 맡은 적이 있다. 수석에 취미가 있다기 보다는 당시 치악수석회를 이끌어가고 있던 친분이 두터운 황주익 원주문화원장의 권유로 참가했다.
“1884년에 수석동우회에서 석우(石友)들을 만나면서 무위당 선생님과 친분을 쌓게 되었어요. 선생님은 저를 보면 이름대신 ‘빛남아~’라고 부르셨어요. 왜 ‘빛남’이라고 부르실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이름 가운데 자(字)인 ‘일(一)’이 으뜸을 뜻하기도 하니까 ‘빛남’으로 부르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정감어린 목소리로 별명을 불러주실 때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선생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는 듯해서 기분이 우쭐해지더군요. 가끔 선생님을 모시고 약주를 대접하며 말씀을 경청했는데, ‘네가 갖고 있는 수석은 대자연의 일부이며 너의 벗이고 스승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석 애호가들은 풍상에 깎이어 변화가 많은 돌을 좋아하고, 검고 윤기가 흐르는 오석(烏石)을 선호하지만, 무위당 선생은 강가나 바다 등 자연 속에 그대로 놓여 있는 돌을 좋아했다. 수석동우회에서 남한강가로 탐석여행을 떠날 때 가끔 동행하기도 했는데, 수석을 채집하는 걸 즐기기 보다는 사람과의 만남을 더 즐겼다. 특히 탐석(探石이)을 한다면서 돌밭을 헤집어 놓고 수석을 한 가방씩 지고 오는 것은 물욕에 불과하며 정신적 수양이 부족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간혹 무위당 선생이 수석을 선물 받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인사치레로 한참 감상한 뒤 마당의 수돗가 주변에 갖다 놓고 집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감상하게 했다. 그러다보니 마당에 있던 수석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생은 “원하는 사람이 갖고 갔으면 됐지”하면서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하루는 무위당 선생이 김일남 선생을 집으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글을 써주었다. 이 글은 중국 당나라 때 고승 임제선사의 말씀으로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 지금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라는 뜻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 놓여도 진실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라는 의미가 담긴 이 글은 평생 제 삶의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30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나태해질 때마다 이 말씀을 되새기며 교사의 본분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선생님이 주신 작품 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인데, 아들이 분가할 때 이 말씀대로 살라며 주었습니다. 아들도 무척 좋아하는 글입니다.”
이 작품 외에도 김 선생이 받은 작품은 예닐곱 점 된다. 서너 점은 갖고 싶어 하는 지인에게 주었고, 지금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은 김 선생의 호(號)를 쓴 ‘청석(靑石)’과 세상사에 흔들리지 말고 고요함을 지키라는 뜻의 ‘입정약산(入靜若山)’, 소동파가 깨쳤다는 무정설법(無情說法)에 관한 글이다.
 
김 선생은 안방에 걸려 있는 ‘무정설법불사의(無情說法不思議)·무정설법은 불가사의하다’라고 쓴 무위당 선생의 작품을 거실로 가져와 내게 보여주었다. 이 글을 보자 “살아 움직이지도 않는 무정물인 돌이나 바위, 흙덩이가 무슨 설법을 하는가 싶지만, 진실된 마음의 눈으로 보면 무정물이 설법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무정설법에 관해서 이런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소동파(蘇東坡)가 선(禪)에 관심을 가지고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법을 물었다. 이때 요원선사라는 고승이 “사람이 말로 하는 유정설법을 들으려 하지 말고 무정설법을 들으라”고 했다.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소동파는 나귀 등에 올라타고 절을 나오며 무정설법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내려오던 도중에 골짜기에 폭포물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계곡을 건너며 물소리를 듣던 소동파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섬광이 일어나면서 깨우침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김 선생이 그윽한 눈길로 작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유정설법(有情說法)은 사람이 말로 하는 법문을 말하고, 무정설법(無情說法)은 이름 없고 말을 못하는 돌멩이와 풀, 옷깃을 스치는 바람 같은 우주만상이 설법을 하는 것을 뜻하는데, 말을 못하는 무정물에서도 삼라만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글입니다. 무위당 선생님은 수석을 좋아하는 저에게 영겁의 세월을 침묵으로 견뎌온 돌에서 배움을 얻으라는 의미로 써주셨겠죠. 이 글을 볼 때마다 거실에 있는 저 돌들이 나의 벗이자 스승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따라 ‘빛남아~’라고 부르셨던 선생님의 목소리가 더욱 그립군요.”
 
 
 
아대기 아대기 무정설법불사의(也大奇 也大奇 無情說法不思議)
약장이청종난회 안처문성방득지(若將耳聽終難會 眼處聞聲方得知)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비로소 알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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