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65호] 한묵청연 '불쑥기행 - 편지에 담긴 마음'
등록자 황진영 등록일자 201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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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청연
 
불쑥 기행 2. - 편지에 담긴 마음
 

                                                          글. 김익록 강원교육청 장학사
 
 
 
 
지난 호에 박종철 열사의 부친인 박정기 선생이 돌아가시기 두 달 전에 입원하고 계셨던 부산의 요양병원에 문병을 다녀온 얘기를 실었다.
박정기 선생을 뵙고 나서 부신에 살고 있는 무위당사람들 회원 조훈철, 이선연 부부의 환대로 의미 있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동주 심상덕 선생과 추진수 전 국장과 함께 영담(影潭)  스님이 계신 청도로 향했다.
운문산 자락 보갑사 영담한지미술관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12년 6월 초순에 역시 동주 선생을 모시고 여미현, 김미숙 님과 함께 스님을 찾아뵙고
무위당 선생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 듣고 돌아온 적이 있다.
영담 스님은 1985년부터 1989년까지 5년간 원주시 단구동 원주천 냇가에서
‘전통한지연구소’라는 한지 공장을 운영하며 무위당 선생 등 원주의 어른들과 교류했다.
영담 스님은 이 때 이 분들의 도움으로 맥이 끊어졌던 전통종이 6종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며
이들과의 시절인연을 특별한 축복으로 기억한다.
영담 스님은 특히 무위당 선생을 ‘맑되 맑음으로 남에게 상처주지 아니하고
유식하되 유식으로 남을 주눅들지 않게 하는,
너그러움과 푸근함이 달빛처럼 흐르는 분’이라고,
‘구수하고 소박하시면서도 예리하고 냉철한 의식과 명리를 탐하지 않는 선비정신,
그리고 뛰어난 문향(文香)과 예술적 깊이와 철학을 지니고 달관하는 삶을 사셨던 모습이야말로
망설임 없이 원주의 노자(老子)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이라며,
‘언제나 이웃을 챙기고 옳고 순수한 일에 아낌없이 정성과 헌신을 쏟으신 지극하신 분’으로 기억하고 계셨다.
 
무위당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전 원주기독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지인 편에 보내주신 서예 작품 ‘무아아아(無我我我)’를 맘에 들지 않는다고 돌려보냈더니
며칠 후에 다시 ‘진여월(眞如月)’을 보내주신 사연을 전하며,
자신의 당돌하고 무례한 행동에도 노여워하지 않으셨던 선생의 자비와 관용의 마음이 그립다고 영담 스님은 말씀하셨다.
 
 
만 6년 만에 다시 찾아 뵌 영담스님은 예전 그대로 정정하고 당당한 장인의 모습이셨다.
오래된 짐 보따리를 정리하다가 무위당 선생께서 보내주신 서화 작품 한 점과 편지글을 발견했다고 기별해 주셔서
이번에 부산 오는 길에 찾아뵙게 된 것이다.
스님은 ‘아직 미처 정리하지 못한 짐 꾸러미들 속에서 더 많은 작품이나 자료들이 나올 텐데,
잘 둔다고 둔 게 어디 두었는지를 몰라서 못 찾고 있다’며 이번처럼 우연히 또 나오게 되면
바로 기별을 주겠다고 하시며 껄껄 웃으셨다.
 
이번에 나온 서화 작품은 선가귀감(禪家龜鑑)에 나오는 구절을 쓰신 것으로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떼어놓고
한 번 뚫어 보면 몸뚱이 째 들어갈 때가 있을 것이다.’라고 해석한다.
수행하고 정진하는 일의 어려움을 말하는 내용으로,
즉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각오로 철저하고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 한다.   
 
 
편지글에 얽힌 사연 또한 재미있다. 영담 스님께서 원주에 거주하던 때인 1987년 어느 여름날
한국 불화의 거장 삼락자(三樂子) 석정(石鼎) 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 118호 불화장)으로부터 심우도(尋牛圖) 작품을 받았는데,
마침 작업장에 들르신 무위당 선생께서 보시고 ‘참 좋은 작품’이라며 마음에 들어 하셔서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후 표구사 사장이 그 작품을 표구해서 들고 왔는데, ‘본디 영담이 받은 것이니 주인에게 돌려드린다’며,
‘이런 소중한 작품을 내게 주신 그 행위와 마음 자체로 이미 다 받은 것’이라는 내용이 적힌
무위당 선생의 편지 한 통이 함께 왔다.
 
선생은 이 편지에서 ‘삼락자 석정 스님의 화심(畵心)이 영담 스님께 있으니
이 작품은 마땅히 영담 스님께서 평생 지녀야 한다’며 ‘표구 값은 다 처리하였으니 괘념치 마시라’는 당부도 함께 보냈다.
평소에 늘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을 걱정하고 배려했던 무위당 선생의 마음씀씀이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영담 스님은 “무위당 선생께서는 한지를 연구하는 나뿐만 아니라
옻칠공예 하는 사람, 서예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사람, 조각하는 사람 등 문화예술인들을 귀하게 여기셨다.
오염되고 혼탁해진 요즘 시절이다 보니 선생님이 더욱 그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뒤 스페인에서 한 달이 넘게 열리는 한지 특별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곧 출국해야 하는 스님께서
준비하시느라 매우 바쁘시기에 우리 일행은 짧은 만남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 나와야 했다.
6년 전 그 자리에서 인증 샷을 찍으며 스님께서는
‘또 어디에서 보따리 하나 불쑥 나타나 아직 찾지 못한 선생님 작품 나오면 연락주시겠다’고 하시며 우리의 서운함을 달래주셨다.
‘너무 잘 보관하겠다고 정리해 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살림살이가 많아지다 보니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린 것이 탈’이라며,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배웅해 주신 영담 스님께서 작품이든 편지든 무엇이던지 “찾았다!”며 우리에게 기별 주실 날이
금방 돌아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마음 때문인지 원주로 돌아오는 길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무위당 선생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정은 언제나 늘 그렇듯이 예상치 않았던 상황이 자주 생기고
기대하지 못했던 만남이 종종 이루어진다. 그런데 늘 따뜻하다!
당황스러운 느낌조차 별 것 아니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생각지 않았던 만남에서, 그리고 선생과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사연에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된다.
‘무위당 선생님’을 매개로 만나게 되는 모든 경우가 그러하다!
불쑥불쑥 예기치 않은 동주 선생의 호출에 아주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내가 꼭 따라나서는 이유이다.
‘돌아가신 선생님께서 산 사람들 공부시키는구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철없던 어린 시절 선생님께서 써 주신 ‘학불염(學不厭)’ 세 글자가 자주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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