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5호]한묵청연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하늘과 땅 '인중천지' '
등록자 교육담당 등록일자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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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청연
 
사람의 마음속에 간직한 하늘과 땅
 
글. 금장태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지난 3월초 ‘밝음의원’을 찾아가서 곽병은(靑眼 郭炳恩) 원장의 진료를 받았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벽에 걸린 액자를 보니, 무위당(無爲堂 張一淳, 1928-1994)선생의 글씨로 “사람 속에 간직된 하늘과 땅”이란 뜻으로 ‘인중천지’(人中天地)라는 네 글자가 눈에 들어와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우리시대에 무위당이 아니면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점에서 무위당선생은 우리의 전통사상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 동시에 혼돈 속에 빠져있는 우리시대의 정신상황과 우리사회의 현실에 불을 밝혀 길을 제시해주는 사상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는 욕심만 가득 들어있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는 걱정근심이 가득 들어 있어서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라를 근심하는 우국충정으로 충만하기도 하고,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한 신앙에 푹 빠져 있기도 하며, 좌파거나 우파거나 사회적 이상을 실현하려는 신념으로 충만하기도 한다. 과연 이런 마음속에 하늘과 땅이 들어설 자리가 있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어서, 안정을 얻을 수도 없고, 평안을 얻을 수도 없으니, 어떤 성인은 ‘마음을 비워라’(虛其心)고 가르치기도 하고, 온갖 망상이 일어나는 마음을 다 지워버려, 마음에 아무 것도 없는 ‘무념’(無念)이나 ‘무심’(無心)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방 한 치(方寸: 心) 밖에 안되는 이 비좁은 마음속에 끝없이 넓은 하늘을 품고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땅을 간직하려든다는 밀인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는 하느님의 삼위일체(三位[聖父·聖子·聖靈]) 문제를 밝히려고 고민하면서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닷가 모래밭에 작은 구덩이를 파놓고,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넣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보고, 무얼 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이 구덩이에 바닷물을 다 퍼 넣으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을 듣고서, 그는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존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크게 깨닫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처럼 작은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하늘을 담기는커녕 제대로 알기조차 어렵다는 말이다.
 
또 셰익스피어(Shakespea, 1560-1616)의 󰡔햄릿󰡕에서는 햄릿이, “호레이쇼야, 이 하늘과 땅에는 네 철학으로 꿈도 꿀 수 없는 일들이 많단다.”라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도 모르는 일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데, 어찌 하늘과 땅을 마음에 모두 인간의 마음속에 담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인간이란 비록 지극히 작고 나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 깊이와 그 가능성을 헤아릴 수 없는 신묘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인간존재는 하늘이나 땅처럼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존재이고, 동시에 하늘이나 땅과 통하는 존재이기도 하고, 하늘과 땅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없으면 하늘과 땅의 깊은 의미를 알아줄 존재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고 사람이라 하여 아무나 하늘과 땅을 품을 수 있는 것이라 하기는 어렵다. 사람으로서 그 영혼의 깊은 세계를 열어놓은 경우라면, 하늘과 땅도 넉넉히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인간이 하늘과 땅을 마음속에 간직하려면, 그 조건으로 먼저 자신의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마음을 비워내고, 무엇이나 받아들일 수 있는 맑고 툭 터진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한(漢)나라 왕부(王符, 85-162)는 “하늘은 양(陽)에 근본하고, 땅은 음(陰)에 근본하며, 사람은 그 속에서 조화를 이루는데 근본 한다.”(天本諸陽, 地本諸陰, 人本中和.<󰡔潛夫論󰡕>)고 하였다. 곧 하늘과 땅이 서로 대응하는 것이라면, 사람은 하늘과 땅을 조화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라 보기도 하였다. 그만큼 하늘과 땅과 사람(天·地·人: 三才) 가운데서도 인간은 그 중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음을 말한다.
북송(北宋)시대 도학자인 소강절(康節 邵雍, 1011-1077)이 지은 「서명」(西銘: 訂頑)의 첫머리에서, “하늘은 아버지라 일컫고, 땅은 어머니라 일컬으니, 나는 여기에 자그마한 존재로 그 속에 한 몸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천지에 가득 차 있는 것은 나의 몸이 되었고 천지를 이끄는 것은 나의 성품이 되었다.”(乾稱父, 坤稱母, 予玆藐焉, 乃混然中處, 故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고 하였다.
 
‘하늘과 사람이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天人合一)는 주장을 넘어서, ‘하늘과 땅이 사람과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룬다’(天地人合一)라 밝히고 있는 입장이다. 소강절의 이 말은 무위당의 ‘인중천지’라는 말과 그 의미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곧 무위당은 소강절의 이 말을 ‘인중천지’(人中天地)라는 네 글자로 압축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중천지’는 ‘사람은 하늘과 땅 가운데 들어있다’는 말이면서, 동시에 ‘사람은 하늘과 땅과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소강절은 위에서 인용한 말에 이어서,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있다.”(民吾同胞, 物吾與也.<「西銘」>)고 하여, 모든 백성이 자신과 한 몸이 되고, 만물도 자신과 함께 가는 동반자임을 말했다. 무위당이 말한 ‘사람 속에 하늘과 땅이 있다’(人中天地)는 말씀을 받아들인다면, 사람을 만나서는 어떤 사람이나 하늘처럼 섬기지 않을 수 있겠으며, 사물을 만나서는 어떤 사물이나 자기 몸처럼 아끼고 보살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만 친애하고 다른 사람은 멀리하거나, 자신이 기르는 개나 고양이 등을 반려(伴侶)동물로 사랑하면서, 다른 동물이나 사물을 싫어하고 천시하는 마음을 벗어나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중천지’ 네 글자는 바로 무위당의 생명사상 내지 생명운동을 뒷받침하는 철학적 기반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동학(東學)의 2대 교주인 해월(海月 崔時亨, 1827-1898)의 가르침인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이 하라)이라는 말이 실천적 지침을 밝힌 것이라면, 무위당의 ‘인중천지’는 그 이론적 근거를 밝혀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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