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78호] 쉬어가는 페이지 "지범개차(持犯開遮)" 이야기
등록자 관리자 등록일자 202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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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범개차(持犯開遮) 이야기
열 때는 열고, 닫을 때는 닫아라.
 
서예문인화가 湖山 蔡熙昇
 
 
 
 
 
불교에서는 지범개차(持犯開遮)라는 말이 있다. 모든 계율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에 의하여 적당히 응용될 수가 있으며, 계율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와 인간과 자연 또는 유정물들과의 모든 관계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임진왜란 때 살생을 금하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승병을 이끌고 창칼을 들고 왜적을 무찔렀던 일이다. 불가에서는 무조건 살생을 금한다고 하며 백성들이 왜적에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면 그것을 어찌 자비심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죄없는 무고한 백성들의 죽음을 지켜 보고만 있는 것이니 이 또한 살생과 다름 아닌 것이다.
 
논어에도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춘추시대 노(魯)나라 미생(尾生)이란 사람은 성품이 우직하여 한번 약속하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나무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다리 밑에서 기다렸으나, 여자는 오지 않고 폭우가 내려 물이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다리 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위험하니 어서 피하라고 하였지만, 미생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다리 아래 교각에 의지하여 꼼짝을 않고 있었다. 마침내 불어난 강물에 목조(木造)다리는 휩쓸려 떠내려갔고,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했다며 황토물이 밀려와도 끝내 교각을 끌어안고 있던 미생은 함께 떠내려가 죽었다고 한다. 이를 장자는 미생의 융통성 없고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쓸데없는 명분에 빠져 소중한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인간은 진정한 삶의 길을 모르는 놈.” 이라고 통박(痛駁)하고 있다.
 
지범개차(持犯開遮)는,
1. 계율을 지키고 보호해 가지는 것이며,
2. 계율은 침범할 수 있다는 말이며,
3. 계율 범함을 개방한다는 말이며,
4. 계율을 범하는 것을 차지(遮止: 그치게 함)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모순적으로 보여 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불가에서는 정확하게 지범개차를 말하고 있다.
 
1980년대 어느 날 무위당은 어느 스님을 포함한 너댓 명의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먹을 때가 되자 주변의 식당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그 주변에는 식당이 많지 않아 퍼뜩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어떤 식당을 하나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은 고깃집이라 일반음식이 마땅치가 않았다. 동행했던 사람들이 스님의 눈치를 슬쩍 보며 난감해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 다른 식당을 더 찾아보아야겠어요.”
 
그러자 무위당은,
 
“아니에요. 스님도 고기버섯은 괜찮아요.”
 
그날 무위당의 ‘고기버섯’이라는 이 말 한마디에 어느 누구도 어색하지 않은 저녁을 마칠 수가 있었다.
 
바로 ‘지범개차(持犯開遮)’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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